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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87 |
조선신보는 이번 기사에서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청상회)의 30년 역사를 “유족한 동포사회와 찬란한 미래”로 포장하며, 청상회가 마치 재일동포 사회의 자발적 결집체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총련의 조직망 속에서 ‘새로운 간판’을 달았을 뿐,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또 하나의 하위조직에 불과하다. 기사 속 증언처럼 “총련에 이미 정연한 조직체계가 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새 조직을 내온 것”은 단순한 청년들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총련 지도부가 젊은 세대를 기존 조직의 틀 안에 가둬두기 위한 정치적 장치였다.
청상회의 출범 배경으로 제시된 “30대의 고민과 갈등”은, 사실상 부모 세대가 속해 있던 총련이나 상공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세대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사업과 정치 활동에 종속되기 싫어’ 독립적인 공간을 원했으나, 총련은 이를 “새로운 조직 창출”로 둔갑시켜 결국 또다시 자신들의 관리 체계에 편입시켰다. 이는 청년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총련이 갈등을 흡수하고 세대 불만을 무마하려는 일종의 ‘동원술’이었다.
조선신보는 청상회가 재일동포 사회의 희망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조직이 실제로 해온 활동은 대다수 지역에서 친목회 수준에 머물렀고, 독립적 기업가 정신이나 자유로운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활발한 일부 사례조차 총련의 정치적 지시에 종속되어 운영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의 상공인 네트워크라기보다는 ‘총련 청년층의 충성 조직’으로 기능했다. 다시 말해 “찬란한 미래”라는 미사여구는 정치적 통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번 기사는 총련 청상회를 “우리 모두의 앞날”로 미화했지만, 실제로는 재일동포 사회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틀일 뿐이다.
청상회가 청년 세대의 고민을 진정으로 해결했다면, 왜 여전히 젊은 세대의 다수가 총련의 행사와 조직 활동에 등을 돌리고 있을까? 현실은 뚜렷하다.
청상회든 총련이든 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낡은 조직 논리를 억지로 연장하려는 북한 김씨왕조의 집착일 뿐이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