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22] 카를로 아쿠티스의 단순한 신앙
  • 빌리 스완 Billy Swan is a priest of the diocese of Ferns, Ireland, and a former research chemist. 아일랜드 펀스 교구 신부

  • 저는 지금 이 글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아씨시에서 순례 중에 씁니다.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고향이며, 9월 7일부터는 카를로 아쿠티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모습은 프레스코화와 성화에서 전해지고, 그들의 글과 서간은 역사적 자료에서 전해집니다. 반면 카를로의 모습은 사진과 영상에서, 그의 언명과 지혜는 그가 일기 속에 기록한 말들과 부모, 친구들에게 남긴 말에서 전해집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수도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카를로는 유리관 속에 안치된 그의 육신이 청바지를 입고 누워 있습니다.

    그의 시성(諡聖) 이후, 젊은이들은 이 청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그는 누가 성인이 될 수 있는지, 또 성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둘러싼 고정관념에 도전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범한 아이였으나, 컴퓨터를 사랑했고 친구들에게 헌신적이었으며, 모든 이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품었습니다. 비록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나이를 초월하는 지혜와 신앙을 받았습니다. 아쿠티스는 아름답고 이타적인 현대적 삶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이 어린 이탈리아 소년을 제3천년기의 성인으로 들어 올리셨다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또한 두려울 만큼 놀라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의 권고를 들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은 원본으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들은 복사본으로 죽는다.” 여기서 카를로는 획일성이라는 노예 상태를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카를로에게 최고의 선은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픔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고, 기쁨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돈은 그저 누더기 같은 종이에 불과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의 고귀함입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그의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통찰은 젊은이들이 인간의 존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인간의 마음 깊은 갈망을 결코 채워주지 못할 재화(財貨)를 좇지 말 것을 격려합니다. 그의 가르침은 젊은이들의 가슴속 희망을 억누르지 말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카를로는 또한 자신의 컴퓨터 실력을 활용하여 본당과 학교의 웹사이트와 소통 플랫폼을 갱신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나누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음란물이 사람들을 “최면에 빠지게 하여” 피해자와 제작자, 소비자 모두를 비인간화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카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 즉 내적 상태가 말과 행동의 열쇠라는 진리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평온하고 일관되며 기쁜 외적 태도의 비밀이 깊고 아름다운 내적 영성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카를로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육체적 아름다움에는 그토록 신경 쓰면서, 영혼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요?” 카를로는 바로 그 영혼의 아름다움을 몸소 증거했습니다. 그는 이주민, 거지, 장애인, 노인들을 도왔으며, 부모가 이혼한 또래 친구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젊은 삶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성체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많은 또래들이 미사에서 멀어져 가던 시대에, 카를로는 미사 안에서 그를 끌어당기는 진리와 신성을 발견했습니다. 그에게 성체는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턱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성체는 나의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그리고 “매번의 영성체는 우리가 성덕의 목표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급성 백혈병으로 인한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큰 용기를 가지고 죽음을 맞았고, 그의 고통을 함께 겪은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그들은 생존의 기적을 위해 기도했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하여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클라라, 그리고 카를로의 삶은 거의 8세기의 시간 차로 갈라져 있지만, 세 사람 모두는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삶 안에서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창(窓)입니다.

    최근의 카를로 시성은 하느님께서 여전히 사람들을 성인으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성인으로 부르시는가? 레옹 블루와(Léon Bloy)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유일한 비극은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19 21:27]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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