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24] 우리 불만의 여름
  • 리스 라버티 Rhys Laverty is editorial and research director at the Prosperity Institute. 번영연구소 편집·연구 책임자

  • 부모님의 반려견을 제외하면 최근에 제 가까운 사람 가운데 세상을 떠난 이는 없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 있는 좋은 친구들로부터 ‘애도의 메시지’를 자주 받아왔다. 그들은 내가 나라를 잃어버린 데 대한 위로를 건네 온 것이다.

    미국의 친족들은 최근 영국이 스스로에게 가한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본다. 합법·불법 이민 문제 모두에서 스스로의 통제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런던은 함락되었다!”라는 선정적 기사들 가운데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런던 거리를 걷는 것이 여전히 뉴욕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올여름 무언가 변했다. 시위와 폭동, 깃발이 나부끼는 행진, 그리고 9월 초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왕국을 하나로” 집회로 절정에 이르렀다. 경찰 추산 약 15만 명, 주최 측은 300만 명이라 주장했는데, 진실은 아마 그 사이쯤일 것이다.

    어쨌든 엄청난 규모였으며,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평생 자신이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 집회는 “소외된 영국 중산층의 영혼이 토해낸 울부짖음”이었다. 대량 이민과 언론·표현의 자유 억압이 분노의 표적이었고, 대영제국이 그들의 애정의 대상이었다.

    그 집회는 논란이 많은 우익 활동가 토미 로빈슨이 주도했다. 그는 전직 훌리건이자 사기 전과자, 마약 문제로 얼룩진 인물이다. 그러나 영국인들 중 상당수는 그가 드러낸 파키스탄계 성범죄 집단 실태에 대한 “어떤 정당성” 때문에 그의 결점을 잠시 눈감아주고 있다.

    이러한 사태 속에서, 미국의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영국이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1956년 에덴 수상이 수에즈 전쟁에 뛰어들었을 때, 쇠락하는 제국에 아파하던 보수 언론은 “영국이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 믿었다.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SAS(영국 특수부대)가 승리했을 때,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군대가 승리했을 때도 그러했다. 90년대 중반 브릿팝과 “쿨 브리타니아” 운동도 그와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브렉시트는 전 세계를 뒤흔들며 “통제권 회복”을 향한 열망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재기”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달란트를 탕진한 집안과도 같았다. 군사적 승리와 문화적 성취는 의미 있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헌정적·정치적·영적 기반은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왔다. 1950년 유럽인권협약 가입 이후 우리는 점차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증오하는” 관료들과 정치가, 법조계의 진보적 엘리트에게 주권을 내주었다. 심지어 브렉시트조차 이 흐름을 뒤집는 데 실패했다.

    올여름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바로 그 무력감 때문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소형 보트 사태’였다. 올해에만 3만 1천 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들이 영국 해협을 건넜는데, 그중 90% 가까이가 남성이었다.

    2018년 이래 18만 2천 명이 넘었으며, 이는 영국 군 전체 병력보다 많다. 국제 협약과 사법부의 판결로 인해 사실상 추방은 불가능해졌고, 그들은 전국의 호텔 등에 수용되며, 연간 35억 파운드의 세금이 들어간다. 이들이 들어가는 곳마다 무질서와 불안이 뒤따른다. 이민자들에 의한 일련의 성범죄 사건은 사람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그렇게 “불만의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쌓여온 불만이 폭발한 것에 불과하다. 합법적 이민조차 줄지 않았고, 오히려 브렉시트 이후 더 늘어났다. 2015년 순수 이민은 33만 2천 명이었고, 2023년에는 90만 명을 넘었다. “나라”와 “민족”이 없다고 말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는 국가와 민족이 존재한다. 그것은 창조 질서의 일부이며, 하느님 섭리 안에서 주어진 공동체의 구조다. 이를 해체해 무색무취한 인류로 만들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위험한 모험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쩌면 영국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적 뼈대조차 없던 이들이 오랜 세월 지도자들의 불신앙과 허무주의적 정책의 대가를 감내해 왔고, 이제 그 고통이 길 위로 터져 나온 것이다.

    물론 일부 과격한 장면들도 있었지만, 올여름의 시위는 무엇보다 평화롭고 진지하게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포하려는 국민의 시도였다. 지도자들은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주변부에서만 보이는 추악함이 곧 중심으로 번져들 수 있다.

    설령 지도자들이 듣는다 해도, 오랫동안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던 나라가 다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과 회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사는 풍성하지만, 앵글로 색슨 자유 전통, 절제와 중용, 역사적 기독교 신앙, 신뢰 기반의 공동체성 등은 너무 오래 짓밟혀 왔다. 이제 다시금 우리 스스로를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나 위대한 쇄신의 순간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알프레드 대왕의 치세, 마그나 카르타, 종교개혁, 명예혁명….

    잉글랜드와 영국은 이전에도 다시 일어선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22 06:48]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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