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몇 주 동안 미국 전역의 가톨릭 성당들에는 변호사와 판사들이 모여, 성령께 봉헌되는 엄숙한 특별 미사(Solemn Votive Mass of the Holy Spirit)―일반적으로 “적색 미사(Red Mass)”라 불리는 전례―를 거행할 것이다.
이 전례적 전통의 기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흔히 14세기 초 처음으로 거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목적은 삼위일체의 제3위격이신 성령께서 변호사들에게는 변론할 지혜와 영감을, 판사들에게는 공정하게 판결할 빛과 통찰을 내려주시기를 간구하는 데 있었다.
영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처음 적색 미사를 거행한 지 600년이 지난 후, 이 전례는 미국에 도착하였다. 미국에서의 첫 적색 미사는 1928년 뉴욕에서 봉헌되었고, 곧이어 미국 전역의 가톨릭 법조인들이 이 전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41년 보스턴에서 적색 미사 전통이 시작되었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주요 도시 20곳 이상에서 정기적으로 거행되었다.
20세기에 들어 적색 미사가 미국 법조계에서 점점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인구학적·철학적 이유가 있었다. 먼저, 20세기 초반은 미국 내 가톨릭 법조인 공동체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유럽에서 이민 온 가톨릭 신자들의 1세대 미국 태생 자녀들은 법조계 진출을 사회경제적 상승의 신뢰할 만한 수단으로 인식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세기 중반 이전에 많은 가톨릭 법학전문대학원들이 설립되었다.
크레이튼(1904), 포드햄(1907), 로욜라 시카고(1908), 마케트(1908), 산타클라라(1911), 곤자가(1912), 로욜라 뉴올리언스(1914), 로욜라 메리마운트(1920), 보스턴 칼리지(1929), 샌디에이고(1949)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가톨릭 신자들이 법조계에 진입하고 국내 법률 및 정치 영역에서 영향력을 얻게 되면서 적색 미사 역시 점점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인구학적 요인을 넘어, 20세기 가톨릭 법조인들이 미국 법 전통에 대해 제기한 철학적 주장은 적색 미사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보스턴에서 적색 미사가 시작된 것은 보스턴 칼리지 법학전문대학원의 예수회 학장이었던 윌리엄 J. 키닐리(William J. Kenealy)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법조계가 미국 법 전통의 토대, 즉 「독립선언서」가 천명한 “자연법과 자연의 하느님의 법”을 버리고 있다고 보았다.
키닐리는 1941년 적색 미사 강론에서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법의 존엄성이 단순한 힘―적어도 물리적 힘―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법의 존엄성은 “도덕적 권능”에 있으며, 이는 “자유로운 국민이 법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자신들의 본성 안에 새겨진 천부적 권리를 안전하게 향유하기 위한 수단임을 자각할 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뉴욕에서의 적색 미사에서도 프랜시스 J. 스펠먼 대주교는 “올바름(正直)만이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인들이 독립선언의 원칙들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물론, 20세기 초·중반의 강론자들이 정교한 법철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적색 미사는 학문 강연이 아니라 전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법조계에서 독자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이 시기 가톨릭 법조인들이 엘리트 법학 기관이나 다수 정치 세력이 법을 단순히 사회 갈등 조정의 수단으로 축소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도 놀랍지 않다.
예를 들어, 전간기와 전시기의 강론자들은 법을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을 가르치는 도덕적 교사로 보는 기능을 거부한 ‘법 현실주의자들(legal realists)’을 비판했다. 몇몇 강론자들은 남부 지역 청중 앞에서도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자연법 전통에 뿌리 둔 견해들은 반드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미국 법무장관을 지낸 프랜시스 비들이 몇몇 예수회 법학자들을 “홀름즈의 법철학에 십자군적 열정과 광신으로 달려드는 자들”이라 조롱할 정도였다.
오늘날의 적색 미사는 한때 가톨릭 법조인들의 정체성을 불태웠던 독특한 비전을 간직한 잔영이라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오늘날 미국의 가톨릭 법학전문대학원들은(대부분 매년 적색 미사의 공동 주최자이지만) 학생들에게 차별화된 직업적·소명적 양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세속 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존 브린(John Breen)과 리 스트랭(Lee Strang)은 가톨릭 법학 교육―그리고 가톨릭 법조인의 비전―의 쇠퇴가 역사적 우연이나 필연이 아니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따라서 올해의 적색 미사 거행은 가톨릭 법학도, 교수, 행정가, 실무자 모두가 가톨릭 법조인의 소명과 가톨릭 법 실천을 떠받치는 원리들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적어도 이 기회를 활용한다면,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오늘날 가장 긴급한 법적 논쟁들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가톨릭 지성 전통의 통찰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통은 적색 미사 자체보다도 더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