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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자원 화재로 국가전산망 먹통 |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의 여파 속에서 또 한 명의 애꿎은 공무원이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과 정부의 설명은 모순과 애매함만을 남기며 국민적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3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인근에서 행정안전부 소속 A씨가 투신해 숨졌다. 그는 국가전산망 장애를 총괄하던 담당 공무원으로, 불과 며칠 전 대전 국정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647개 정부 전산 시스템이 마비된 사건의 직접적인 대응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A씨는 수사 대상이 아니며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바로 그 책임 선상에 있던 담당자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수사와 무관하다는 경찰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이미 화재와 관련해 국정자원 관계자와 공사업체, 감리업체 인원 등 4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전산망 관리와 복구 책임을 지고 있던 정부 부처 공무원은 “관계없다”는 말로 처리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마치 애꿎은 사람만 희생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공무원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적 비극으로 축소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가”라는 근본적 이유인데, 이에 대한 해명은 오히려 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적 위기 때마다 담당 공무원이나 하위 책임자들이 자책감과 압박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되풀이되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구조적 책임을 져야 할 상층부는 늘 건재하고, 가장 가까운 현장의 담당자만 희생되는 ‘고독사적 희생’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짧은 애도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단순 애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은 “국가전산망 마비라는 중대한 사태 앞에서 담당 공무원이 죽음으로 내몰린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책임 소재를 회피하고 있고, 행안부는 조직적 진상 규명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국민 불신을 키우는 태도일 뿐이다.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킨 화재, 그 혼란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무원, 그리고 “책임 없다”는 애매한 경찰의 설명. 이 삼중의 그림자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으로 덮어질 일이 아니다.
국민은 묻고 있다. 과연 그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 배후에는 어떤 압박과 책임 전가가 있었는지, 왜 경찰은 성급히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지..
이 의문들에 답하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투신 사건이 아니라 국가 책임 회피와 희생 강요의 또 다른 상징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만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