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38] 새로운 인본주의를 향하여 ①
  • 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공공정책 센터 연구원

  •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질문은 시편 기자가 던졌던 바로 그 물음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시나이까?” (시편 8,5)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 근본적 물음이 너무나 절실하기에, 이제 다시금 ‘하느님’의 물음이 지성계와 문화계의 중심부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아이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 나이얼 퍼거슨(Niall Ferguson), 폴 킹스노스(Paul Kingsnorth), 러셀 브랜드(Russell Brand)와 같은 현대 사상가들이 최근 모두 신앙을 고백하였다. 역사학자 톰 홀랜드(Tom Holland)와 기술기업가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기독교가 문화 형성에 지닌 핵심적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과거 신무신론 운동(New Atheism)의 대표적 인물이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마저 자신을 “문화적 그리스도인(cultural Christian)”이라 칭하며, 비록 이후에는 “영적 각성의 과장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그 발언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런 현상은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1950년, 『파르티잔 리뷰(Partisan Review)』는 “종교와 지식인들(Religion and the Intellectuals)”이라는 기획 연재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W. H. 오든(W. H. Auden), I. A. 리처즈, 존 듀이, 로버트 그레이브스, A. J. 아이어, 시드니 훅, 그리고 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가 필진으로 참여했다. 그 서문에서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시대 진단을 내렸다. 오늘의 우리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진술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 가운데 하나, 특히 최근의 10년 동안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종교로의 새로운 회귀와, 세속적 태도와 관점이 점차 문화의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여러 계층에서 호감을 잃고 있는 현상이다. 종교적 동조나 신념, 혹은 교리를 고백하는 지식인들의 수가 10년, 20년 전보다 훨씬 많으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이 시기를 근대 초반의 시기와 대비시킨다면, 20세기의 첫 수십 년은 ‘자연주의의 승리 시대’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면, 세기 중반은 ‘회심과 귀환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예견은, 결과적으로는 빗나간 예언이 되었다. 그 당시 종교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 회복은 중요했으나, 서구 전체의 방향이나 그리스도교의 문화적 운명에 장기적 전환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종교적 부흥이 단순한 유행 이상일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1950년대의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시대의 맥락을 반영한다.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가 격렬히 논쟁되고 있다. 이 물음에 진지하게 응답하려는 사람들은 그 기초를 안정된 토대 위에 세우려 하고, 그 토대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결국, 신학적 논의로의 회귀는 ‘인간학적 위기’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50년대 역시 그러했다. 세계는 전쟁의 학살에서 막 벗어나 있었고,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현실과 공산주의의 확산이라는 실존적 도전을 마주하였다. 기술 또한 새로운 도덕적 과제를 던졌다. 사르트르는 “원자무기의 등장은 인간을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이게 했다”고 말하며, “그들은 이제 스스로 존재를 계속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오늘날의 인간 역시, 그보다 덜하지 않게 자신의 ‘인간성’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종교를 둘러싼 담론의 변화는 문화적·정치적 희망의 작은 징후를 보여준다.

    니체의 말을 변형하자면, 오늘의 현대 세계의 문제는 “인간은 죽었으며,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데 있다.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어떤 공통의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에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은 폐기되었다.

    그렇다면 이 ‘인간 폐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트루먼은 네 가지 요인을 제시한다.
    즉, 인간 본성이 해체되었고, 탈주술화(탈성사화)되었으며, 비육체화(탈육화)되었고, 그리고 모독(성화 상실)되었다.

    첫째, 해체(dismantling)의 원인은 다양하다. 서구 문명의 인간학을 형성했던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은 본질적으로 목적론적(teleological)이었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사유에 뚜렷이 나타나며, 또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답에서도 요약된다.

    “사람의 으뜸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의 으뜸가는 목적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욕망의 한계를 넘는 초월적 목적 (finis ultimus)에 의해 규정되었다. 인간의 존재는 단지 자연적 욕구로만 정의되지 않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궁극적 지향속에서 의미를 얻었다. 그러나 목적론(teleology)은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서구 사유의 지평에서 사라져왔다.

    근대 과학이 ‘원인’을 논할 때, 효율적 원인(causa efficiens)과 물질적 원인(causa materialis)에만 관심을 두고, ‘목적’(causa finalis)의 차원을 배제하면서부터, 세계의 의미—그리고 필연적으로 인간 본성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최종 목적’을 부정하는 진화론적 사고이다. 이러한 과학주의적 세계관이 근대 문화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면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서 지닌 ‘특수한 존재의 탁월성(human exceptionalism)’은 철저히 해체되었다. 하느님이 부여하신 궁극적 목적이 부정될 때, 인간은 변함없고 고유한 본성(natura humana)을 상실하게 된다. 하느님을 죽임으로써, 우리는 동시에 인간도 죽인 것이다.

    니체는 이 점을 칸트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이미 간파했다. 하느님을 죽여 놓고서, 그분이 하던 일을 인간 본성이 대신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죽었다면, “인간이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관념도 함께 무너진다.

    20세기에 들어서, 니체의 이 철학적 유산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 의해 이어졌다. 푸코는 인간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자기 구성적 주체로 보던 전통적 인문주의의 개념을 해체하였다. 그는 인간을 담론적 권력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생성되는 피동적 산물로 파악했다. 오늘날 대학의 수많은 세미나실에서 울려 퍼지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수사—좌파이든 우파이든—가 바로 이러한 관점 위에 서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놀라운 지적 능력과 호기심, 분석적 재능, 그리고 기술적 성취야말로 그 자신을 ‘특수하지 않은 존재’로 주장하게 만든다. 최근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그 밑바닥에는 더 근본적인 혼란이 자리한다.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그 물음에 대한 현대적 대답은, 거의 허무주의적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인간이란 단지 방향을 잃은, 시간과 공간 속을 떠도는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인간 폐기의 논리’가 낳은 현대 문명의 자화상이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0-06 16:5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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