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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04 |
노동신문은 “위대한 어머니당에 최대의 영광을!”이라는 제목으로 조선로동당 창건 80돌을 맞이한 북한 사회의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이 장문의 기사 속에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하면서도, 정작 인민의 현실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신문이 묘사하는 “경축의 광장”은 김정은 개인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찬 충성의 무대일 뿐, 인민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논의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른바 “인민의 생일잔치”라는 표현은, 실상은 주민들의 동원과 통제를 미화한 정치적 의식에 불과하다. 기사의 도입부에서 “모든 인민이 붉은 당기를 경건히 우러른다”고 묘사하지만, 그 ‘우러름’이 자발적인 감정이 아닌 체제의 강요에 따른 행위임은 명백하다.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을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피는 어머니”로 신격화한다. 그러나 실제 북한의 현실은 그 정반대다. 식량난, 전력난, 의약품 부족, 그리고 지방의 극심한 격차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문은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도 번짐없이 젖제품이 공급된다”고 주장하지만, 국경 지역과 농촌의 주민들은 여전히 영양실조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린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을 통해 세워진 ‘리상촌’은 일부 시범구역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지역에서는 낡은 살림집과 비포장 도로, 붕괴 직전의 학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붉은 당기’ 아래에서 인민이 얻은 것은 존엄이 아니라 생존의 고통이다. ‘어머니당’이 자식의 굶주림과 추위를 외면한 채, 충성경연과 미화된 ‘건설 선물’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신문은 “모든 근로자들이 어머니당에 로력적 선물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물’은 자발적 헌신이 아니라 상명하복적 동원의 또 다른 형태다.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할 원자재조차 부족한 현실에서 “경축 선물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초과노동에 시달리고, 농민들은 수확량의 일정 부분을 ‘충성미’로 상납해야 한다.
‘인민의 축제’라는 미명하에, 인민의 노동은 다시 한번 ‘충성의 증거’로 전환된다. 체제가 요구하는 것은 복지나 권리가 아닌, ‘헌신의 증명’이다. ‘한마음 우러러 영광 드리자’는 노래 구절은 정치적 맹세로 강요되며,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은 철저히 억압된다.
기사는 김정은을 “인민의 고통을 함께 나눈 지도자”, “자연재해와 전염병을 몸으로 막은 위민의 화신”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전형적인 개인숭배 서사의 반복이다. 수재민 천막을 방문하거나 약국을 찾는 장면은 체제의 구조적 무능을 가리기 위한 선전 도구로만 활용된다.
지도자가 모든 현장을 ‘직접 지도’한다는 서사는, 정치적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 장치이며, 책임의 분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총비서동지께서 가시밭길도 헤치며 인민의 행복을 앞당기신다”는 구절은 인민의 자율적 참여를 지워버리고, 정치적 구원자로서의 ‘영도자’ 이미지만을 부각한다.
노동신문은 “80년 전부터 인민은 당의 품에 안겼다”고 말하지만, 그 80년은 동시에 숙청과 공포, 감시와 결핍의 역사이기도 하다. ‘붉은 당기’는 많은 인민에게 희망이 아닌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 왔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는 ‘인민의 당’이 아니라 ‘가문의 당’을 공고히 해왔다. ‘세상에 이런 당은 없다’는 구호는 사실이다 —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인민의 삶을 이렇게 완전히 통제하는 당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로동당 창건 80돌은 본래 ‘당의 혁명사’를 기념하는 날이지만, 지금 북한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축하의 합창이 아니라 성찰의 목소리다.
“위대한 어머니당에 최대의 영광을!”이라는 구호는 더 이상 인민의 찬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굶주림과 통제의 대가로 유지된 권력에 대한 충성의 맹세일 뿐이다.
진정한 영광은 지도자가 아닌 인민에게 돌아가야 하며, 그 길은 ‘붉은 당기’의 찬양이 아니라 인민의 자유와 존엄 회복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