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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 |
미국 백악관이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로 자금이 고갈된 여성·영유아 영양지원 프로그램(WIC)의 운영을 ‘관세 수익’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정부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상황에서도 저소득층 어머니와 아동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풀이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SNS 플랫폼 엑스(X)에 “민주당이 셧다운 사태를 초래하며 가장 취약한 여성과 아동을 위한 WIC 자금이 이번 주 바닥나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수익을 WIC 프로그램으로 이전하는 창의적 해결책을 마련했다”며, “빈곤층 어머니와 아기들이 정치 게임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가까운 미래에” 시행되며, 관세 수익 중 일부가 임시로 WIC 자금으로 전환된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이나 지속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외국산 철강(25%), 알루미늄(50%), 자동차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이번에는 이를 “사회복지 재원으로 전용”하는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무역 관련 수익을 복지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것은 행정적 전례가 거의 없는 조치”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국면을 정치적으로 주도하기 위한 상징적 행보”라고 평가했다.
WIC는 여성(Women), 영유아(Infants), 아동(Children)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으로, 저소득층 임산부·산모·수유부·영유아에게 식품과 영양상담,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방 프로그램이다. 2024회계연도에 약 70억 달러(한화 약 9조9천억 원)가 투입됐으며, 600만 명 이상이 혜택을 받고 있다.
셧다운으로 재정이 중단될 경우, 일부 주에서는 이미 수급자 카드 지급이 중단되거나 식료품 교환이 지연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예산 타협을 거부해 셧다운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수익 전용 결정을 ‘국민 우선주의의 실천’으로 홍보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이 WIC 수급 자격과 예산을 지속적으로 축소하려 해왔다”며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은 공화당”이라고 반박했다.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이번 조치는 단기적 완화책일 뿐, 장기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며 “관세 수익이 불안정한 만큼 지속적인 복지 재정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이 교차하는 이례적 사례’로 평가한다. 무역 확장법이 본래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산업 보호 수단이지만, 이번에는 사회안전망 유지의 재정적 수단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한 미국 사회정책 연구원은 “관세 수익은 불확실하고 정치적으로 조정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복지 예산의 안정적 재원이 되기 어렵다”며 “셧다운이 길어질수록 취약계층이 정치 갈등의 희생양이 되는 구조는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단기적 위기 대응으로는 긍정적이지만, 복지 재정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관세 수익이라는 불안정한 재원을 활용하는 대신, 초당적 합의를 통한 예산 정상화가 절실하다는 점이 워싱턴 정가의 공통된 목소리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