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141] 아테네, 스파르타, 그리고 이스라엘의 미래
  • 닐 로가체프스키 Neil Rogachevsky teaches Israel studies and political thought at the Hamilton School, University of Florida. 이스라엘 정치사상 교수

  • “우리는 이곳에서 자체적인 무기 산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아테네이자 초(超) 스파르타가 되어야 합니다.”

    2024년 9월 1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한 이른바 “스파르타 연설”은 이스라엘의 기술 및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점점 고립되어가는 이스라엘의 처지에 대해 이해할 만한 우려를 드러냈다.

    통찰력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 나다브 에얄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끝까지 읽지 않은 듯, 엑스(X)에 이렇게 썼다. “참고로, 스파르타는 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오래 지속된 고대 그리스의 군사 도시국가 스파르타에 자주 비유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네타냐후의 목표는 새롭다. 그는 스파르타적 길(경제적 자립과 방위 헌신)과 아테네적 길(권리, 민주주의, 문화의 번영, 세계와의 개방성,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들) 사이의 창조적 조화를 꿈꾸고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10월 7일 이후 2년이 지난 오늘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도전을 정확히 요약한 표현이다. 전 세계 여론 속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은 크게 훼손되었으나, 동시에 전장에서는 유대 국가의 세대적 생존을 보장할 수도 있는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유럽과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여론의 쇠퇴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분열이 심화된 서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폭력 위협을 억제하고 표를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도구화하려는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지난주 영국 맨체스터 회당 공격에서 보았듯이, 유럽의 소수 유대 공동체들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명백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론상 시온주의 반대와 반유대주의를 구분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는 그 구분이 인터넷과 거리 군중 정치 속에서 무너진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간의 인구 변화로 인해,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는 세계 최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 공동체가 되었다.

    미국의 상황은 좀 더 유동적이다. 미국은 규모가 큰 유대 공동체를 갖고 있으며, 비록 여러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동적 개혁과 회복의 잠재력을 지닌 나라다. 자기합리화적 신화에 빠지기 쉽지만, 미국 유대인의 경험은 실제로 달랐다. 조지 워싱턴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자신의 포도나무 아래서 두려움 없이 쉴 수 있는 자연권”을 약속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양당 모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이다. 온라인상에 만연한 반유대주의는 이미 오래된 증오의 금기를 무너뜨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과의 우정과 연대를 더욱 가꾸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전략적 제휴가 아니라, 공동선과 인간 존엄을 위한 영적 연대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외교 영역에서는, 감정적 호소가 통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이 위험한 지역에서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라는 논리를 계속 제시할 수 있다.

    일부 비평가들과 달리, 필자는 이스라엘의 지도부가 전쟁 지속에 따른 외교적 대가를 무시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네타냐후의 “스파르타 연설”은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의 악화와 실존적 군사 도전 사이의 선택에서, 이스라엘은 후자를 택했다. 10월 7일의 교훈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중동 내 안보 위치가 겉보기보다 훨씬 취약했다는 것이다.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의 상처 이후, 이스라엘의 일반적 합의는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위협의 해체”를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은 놀라운 성취였으나 완전한 성공이라 보긴 어렵고, 막대한 생명 손실과 국내적 고통을 수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정권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국경 주변의 “불의 고리”는 대부분 사라졌다.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이던 헤즈볼라는 사실상 무력화되었으며, 그 결과 레바논의 회복 가능성은 몇 세대 만에 가장 높아졌다.

    하마스가 어떤 형태로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정부가 말한 “완전한 승리”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킨 것은 이미 새로운 외교적 가능성을 열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종결을 위한 20개 조항 구상”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일부만이라도 실현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중동 질서가 새롭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성공은 국가의 물질적 생존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외교적 돌파구를 열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여론 또한 점차 바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의 위상, 나아가 전 세계 유대인들의 도덕적 명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총리의 자리에 있는 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필자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승리를 위한 전쟁 지속을 택한 결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여론은 언제든 변하지만, 정치적·군사적 실재는 남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제안대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걸프 국가들·비(非)하마스 팔레스타인 세력이 ‘하마스 이후의 가자’를 함께 설계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그 힘을 잃을 것이다. 이 구상이 성공적으로 이행된다면,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시누와르가 10월 7일 공격을 통해 깨뜨리려 했던 ‘아브라함 협정’의 질서는 오히려 더 공고해질 것이다.

    물론, 중동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낙관은 늘 실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전쟁이 2년째 이어진 지금, 우리는 섭리 안에서 희망을 품을 합리적 근거를 발견할 수도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0-09 08:26]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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