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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106 |
조선중앙통신이 10월 9일 보도한 김정은의 당창건 80돐 기념연설은, 겉으로는 “필승불패의 향도력”과 “이민위천의 역사”를 찬양하는 화려한 수사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오늘날 북한이 처한 정치적 고립, 경제적 침체, 주민의 절망적 현실을 감추기 위한 전형적인 권력유지용 미화 선전에 불과하다.
‘창당 80돌기의 년륜이 숭엄히 새겨졌다’는 표현은 마치 조선로동당의 통치가 민족사적 성취인 양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정권이 7천만 민중의 자유와 생존을 담보로 한 세습 독재체제의 연장선임을 은폐하고 있다.
김정은이 “창당의 성지”인 당창건사적관을 찾았다는 보도는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례이자 통치정당성 재확인 의식이다. 참관자들의 “열광의 환호와 박수갈채”는 자발적 충성이 아니라 철저히 연출된 충성극의 일환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더 이상 실질적 성과나 정책적 성취로 민심을 확보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혁명의 성지’라는 상징 공간에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권위의 허구를 재확인하는 의례, 그것이 바로 이번 연설의 본질이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조선로동당이 “근로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대표하는 혁명의 전위대”라고 주장했지만, 북한 사회에서 인민은 더 이상 정치적 주체가 아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급 중단, 통제된 이동, 정치범 수용소, 그리고 통신검열뿐이다.
‘인민대중의 자주성 실현’이라는 주체사상적 문구는 오늘날 주민들이 국가 폭력의 객체로 전락한 현실을 정당화하는 껍데기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식량난이 악화되고 지방 농촌의 아사자 보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표현은 냉소적 조롱으로 들릴 뿐이다.
김정은은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사상적 혈통”을 언급하며 세대 교체 속에서도 당의 “순결함”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는 명백히 세습체제 불안의 반영이다. 그가 연설에서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색을 모르는 당’을 언급한 것은, 젊은 세대의 충성 약화와 내부 불만을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즉, ‘혈통’과 ‘사상’의 결속을 되풀이 강조하는 것은 정권 스스로 정통성 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자인한 발언이다.
김정은이 말한 “제2의 건국시대”는 실제로는 제2의 통제시대에 가깝다. 그는 경제회생의 구체적 비전이나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대신 ‘정신력’과 ‘사상적 단결’만을 반복했다. 이는 실질적 정책 부재를 사상교육으로 대체하는 북한식 통치 패턴의 전형이다.
북한의 건국이 인민의 삶을 재건하는 경제적 과업이 아니라, 당의 ‘순결성’을 지키는 종교적 의례로 변질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선로동당 80년사는 혁명사가 아니라 통제의 역사, 세습의 역사, 폐쇄의 역사다. 김정은의 이번 연설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 연설이 아니라, 과거의 신화에 스스로를 가두는 독백이었다.
그가 “당창건사적관이 천추만대에 빛날 것”이라 했지만, 실제로 빛을 잃은 것은 북한 주민의 삶과 희망이다. 진정한 기념은 과거의 신격화가 아니라, 억눌린 인민이 자유롭게 과거를 비판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평양의 ‘기념연설’은 정권의 불안과 공포를 감추려는 가면극으로 남을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