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09 |
조선신보가 10월 11일 보도한 「〈편지이어달리기대표단〉 전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충정의 마음 안고」라는 기사는, 재일총련을 중심으로 한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 행사를 극찬했다.
기사에 따르면 대표단은 “영광과 긍지를 새겨안으며 훈련을 거듭했고”, “김정은 원수님께 올리는 편지를 안고 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종교적 헌신과 순례의 언어를 차용한, 철저히 정치화된 충성의식에 불과하다.
이 행사는 신앙의 자유나 사상적 자발성이 아니라, 지도자 개인에 대한 절대충성을 강요하는 정치 종교적 의례로 기능한다. ‘편지 이어달리기’는 단순한 체육행사도, 해외동포의 교류 행사도 아니다. 그것은 김정은 체제의 ‘신정적 통치’(theocratic rule)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정치적 순례 행위다.
조선신보는 “전체 조선인민의 충성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안고 9월부터 평양을 향해 보무를 이어왔다”고 썼다. 그러나 이러한 ‘전 인민적 충성’이라는 표현은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북한 내부에서 개별 시민이 김정은에게 편지를 쓸 자유가 있는가? ‘충성의 마음’이 진정 자발적이라면, 왜 그것이 집단적으로 통제되고 동원되어야 하는가? 이 행렬은 자발적 신앙이 아니라 강요된 의무, 개인의 의사 표현이 아니라 체제의 요구에 따른 집단적 복종을 상징한다.
편지를 들고 달리는 행렬은 ‘의지의 전달’이 아니라, ‘복종의 계승’을 의미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절대권력의 전통은 이제 ‘달리기’라는 상징적 행위 속에서 미학적으로 포장된 것이다.
이번 행사에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대표단이 참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적 연대의 표현이 아니라, 총련 조직의 정치적 생존 본능을 드러낸 행위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 급속히 약화된 총련의 존재감과, 북한 당국으로부터의 지원 유지를 위한 과잉 충성이 결합된 결과다.
“훈련을 거듭하며 영광과 긍지를 새겨안았다”는 표현은 오히려 불안과 결핍의 반영이다. 일본 사회 속에서 고립된 총련 조직은, 조국이라는 이름의 상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그 ‘조국’은 민주적 공동체가 아닌, 지도자 우상화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 신정체제다.
조선신보는 행사 내내 “충성의 편지”를 강조하지만, 정작 편지의 내용은 단 한 줄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의미심장하다. 편지가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인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전에 검열된 선전 문구일 것이다.
편지란 본래 마음의 표현이자 자유로운 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북한의 ‘충성의 편지’는 마음이 제거된 상징물, 지도자 숭배의 의례적 도구로 전락했다. 그 안에는 ‘국가’, ‘사회주의’, ‘민족’이란 단어만 가득할 뿐, 인간의 고통이나 희망,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편지 이어달리기’ 행사는 체제의 활력을 보여주려는 연출일 뿐, 정치적 폐쇄성과 이념적 공허함을 은폐하기 위한 절망의 상징극이다. 편지를 달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성의 행진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와 표현이 봉쇄된 사회의 초상이다.
김일성경기장에서의 ‘증정식’은 신앙의 성지순례처럼 포장되었지만, 그 실상은 한 사람에게 바쳐진 봉건적 제례(祭禮)에 불과하다. 북한의 진정한 해방은 편지의 수신자가 아니라, 편지를 쓸 수 있는 자유를 되찾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