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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11 |
조선신보가 소개한 김일성종합대학 리영섭 연구사는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한 력학계의 원로”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기사의 핵심은 과학적 성취의 객관적 검증이 아니라, ‘현실성’이라는 정치적 잣대를 통해 학문을 평가하는 북한식 과학 통제 시스템의 실상을 드러낸다.
리영섭의 초기 논문이 “순수 학술적인 리론에 불과했다”는 이유로 도입되지 못했다는 서술은, 북한에서 기초과학 연구가 얼마나 천대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과학은 체제의 당면 정책과 ‘현장성’이라는 이름의 정치적 실용성에 복무해야만 존재 이유를 인정받는다. 과학의 독립성과 학문적 탐구 정신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조선신보는 리영섭의 연구가 “학계로부터 현실도입가능한 론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과학적 검증의 현실이 아니라, 당과 국가가 설정한 경제계획이나 공업정책의 범위 안에서 허용된 현실이다.
북한에서는 연구 주제의 선정, 실험 자원의 배분, 논문 발표의 기회 모두가 정치적 승인 체계에 종속된다. ‘현실도입 가능’이라는 표현은 곧 ‘당의 방침에 부합한다’는 의미로 읽혀야 한다.
과학적 유용성보다 이데올로기적 적합성이 우선하는 구조 속에서, 학자는 창의적 연구자가 아니라 체제의 기능인으로 전락한다.
리영섭의 경력이 “수년간의 노력 끝에”라는 표현으로 미화되지만, 이는 과학의 발전보다 충성심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에 가깝다. 조선신보는 과학자의 개인적 탐구나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현실적 과제 해결을 위한 헌신”을 찬양한다.
이는 북한의 과학계가 ‘창의’보다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구조에 갇혀 있음을 방증한다. 당이 제시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과학자의 사회적 존재 이유이며, 이는 곧 학문이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선전 도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사에서 ‘고체력학 분야의 권위자’로 소개되지만, 북한 내에서의 ‘권위’는 학문적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신임을 뜻한다. 학문적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학술지나 국제 협력의 통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내부 언론의 호칭은 신뢰할 수 없는 자가증명에 불과하다.
그가 연구한 “고압전기도관 수명평가” 역시 국제 학계에서 공개 검증된 바 없으며, 북한의 폐쇄적 연구 환경을 고려할 때 실제 산업적 효용성 또한 확인할 수 없다. 과학의 성취보다는 체제 홍보용 영웅담의 한 조각으로 기능할 뿐이다.
리영섭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학문적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이 어떻게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왜곡되고, ‘현실성’이라는 미명 아래 사상적 검열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