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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12 |
노동신문이 묘사한 10월 14일의 대집단체조 《조선로동당 만세》는 겉으로는 “인민의 긍지와 환희”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충성의 강요’가 만들어낸 정치적 의식(儀式)에 불과하다.
신문은 “수많은 군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고 자랑하지만, 이 ‘수많은 군중’은 자발적 관람자가 아닌 조직적으로 동원된 평양 시민과 학생, 군인들이다. 공연장은 예술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복종을 재확인시키는 통제된 무대였다.
노동신문은 이번 행사를 “대서사시적 화폭”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상은 예술의 창의나 다양성이 전혀 없는 정치 선전극이었다. 체조, 노래, 영상, 조명까지 모두 ‘김정은 중심의 영도’와 ‘사회주의 한길’이라는 구호를 시각화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됐다.
이는 문화 예술이 권력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시각적 교리서’로 변질된 대표적 사례다. ‘대집단체조’는 북한에서 예술이 인민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체제 충성의 형식적 제례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준다.
신문은 “인민의 긍지와 환희가 넘쳤다”고 반복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이 마주한 현실은 전력난, 식량난, 경제 침체다. ‘문명부흥할 래일’이라는 표현은 빈말에 불과하며, 공연의 화려한 무대조차 대부분 외화벌이 기관이나 군부 산하 단체가 동원한 장비에 의존한다.
결국 ‘승리의 노래’는 인민의 생활고를 가리기 위한 연막이다. 주민들이 느끼는 것은 긍지가 아니라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다.
공연 중 ‘새세대의 노래’, ‘혁명의 계승자’라는 구호는 김정은 체제의 후계정당성을 세뇌하기 위한 상투적 장치다. 이들은 ‘혁명 계승’을 명분으로 청소년과 군인을 정치적 인질로 삼고, 사회 전반에 ‘유일사상 체계’를 주입한다. ‘새세대의 기쁨넘친 노래’는 아이들의 자율적 창작이 아니라, 국가의 지시에 따른 합창이다.
노동신문은 “영웅적 인민군의 전투정신과 혁명적 기백이 차넘쳤다”고 썼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예술이 군사주의 미학에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종합군악례식’은 전쟁과 무력시위의 미화이며, ‘평화수호’라는 표현은 외부의 적을 상정해야만 유지되는 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공연은 평화를 찬양하지 않고, ‘싸움’을 정당화하는 의례였다.
신문은 “불멸할 승리와 영광만이 빛날 것”이라 결론짓지만, 실제로 공연이 보여주는 것은 ‘정체’다. 80년의 당 역사 속에서 북한은 ‘인민의 나라’를 자처했으나, 여전히 식량난과 국제 고립, 기술 후진에 시달리고 있다. ‘대서사시적 화폭’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정지된 시간의 미화’가 이번 공연의 본질이다.
이번 《조선로동당 만세》 공연은 예술적 창조가 아니라 ‘집단적 복종’을 연습시키는 훈련장이었다. 노동신문이 자랑하는 “성황”은 공연의 성공이 아니라 통제의 성공을 의미한다. 김정은 체제는 예술을 ‘국가 의례’로 전락시켰고, 인민의 노래를 ‘지도자 찬송가’로 바꾸었다.
결국 80년의 역사를 자축하는 이 행사는, 북한이 여전히 “당의 축전” 속에 인민을 가둔 사회임을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