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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13 |
조선신보가 보도한 ‘평양량곡가공기계공장의 새 밀가공설비 개발’ 소식은 표면적으로는 기술자립과 효율 향상을 자축하는 성과보도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기사 내용 전반을 살펴보면, 실제 기술적 성취보다 체제 선전 목적이 훨씬 두드러진다.
‘자체의 힘과 기술’, ‘능력이 3배 이상’, ‘부지절약형·로력절약형’이라는 문구들은 이미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북한식 생산보도문법이다. 그러나 정작 어떤 기술을 도입했는지, 품질 개선이 어떻게 검증되었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평가나 외부 검증도 없으며, “세계적 발전동향을 깊이 연구했다”는 구절조차 구체적 근거가 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보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량곡관리성이 해마다 밀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북한의 밀과 곡물 생산량은 국제식량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심각한 부족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2025년 들어서도 지방 단위 배급이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공능력 3배 확대’는 생산 실적과 무관한 정치적 선전으로 읽힌다. 즉, 실제 식량을 더 가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당의 지시를 기술로 받들었다”는 충성의 표징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기술 혁신의 수치가 아니라, 충성심의 크기를 표현하는 단위로 ‘3배’라는 숫자가 등장한 셈이다.
북한은 최근 ‘지방공업혁명’과 연계하여 각종 공장과 연구소의 성과를 연일 보도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경제적 효율 개선보다 정치적 충성 경쟁의 일환이다.
이번 보도에서도 연구소와 공장의 성과가 아니라 ‘량곡관리성의 목표’와 ‘빠른 기간의 설계 완성’이라는 행정적 구호가 강조된다. 즉, 연구자나 기술자의 창의성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 체계 속 ‘집단충성의 실현’이 핵심 메시지로 자리한다.
더구나 “제작원가가 낮다”는 표현도 원자재 수급난과 품질 저하의 우려를 덮기 위한 모호한 수사로 해석된다. 실제 북한의 설비 제작은 낙후된 재료와 불안정한 전력 사정으로 인해 내구성이 취약한 경우가 많으며, 장기 운용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번 기사는 기술적 진보의 보고가 아니라, 식량난 심화 속에서도 ‘혁신과 자립의 기세’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메시지다. 정작 주민들의 식탁에는 여전히 옥수수 가루나 콩가루가 주식으로 남아 있고, ‘밀가루의 미분도’가 아무리 높아져도 빵 한 조각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른바 ‘자체 기술에 의한 밀가공설비’는 생산력의 상징이 아니라, 체제 선전의 무대장치에 불과하다.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구호의 반복이 이어지는 한, 북한 경제의 진짜 문제인 식량의 실질적 확보와 분배의 공정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