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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16 |
지난 9월 일본 나가노현의 기리가미네-구루마야마에서 열린 ‘제27차 재일동포대등산모임’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친목행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식 조직문화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정치적 행사에 가깝다.
조선신보는 이를 “재일본조선인등산협회 결성 30돐 기념 행사”로 포장하며 ‘새 역원들의 비약을 다짐했다’고 강조했지만, 행사 전반의 구조와 언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충성’과 ‘결의’로 점철된 전형적인 체제 선전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보에 따르면 이번 모임에는 21세부터 87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동포들이 참가했으나, 조선신보는 이들의 개인적 교류나 자연친화 활동보다는 ‘협회의 총회’와 ‘연회’를 중심에 두었다고 전했다. 즉, 단순한 산행이 아닌 ‘조직 활동의 결속’과 ‘충성심 재확인’의 장으로서 기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북한의 모든 사회조직—직장, 학교, 예술단체, 심지어 취미 동호회까지—가 당의 방침에 따라 운영되는 구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등산이 아니라 ‘조직 충성의 훈련장’이 되는 셈이다.
조선신보는 이번 행사를 “새 역원들의 비약을 다짐하는 자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비약’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실질적인 자율적 발전이 아니라, 조직 충성의 세대 계승이다.
재일본조선인등산협회는 1990년대 초, 재일조선인 사회 내 문화활동의 일부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김일성-김정일 사상 체육활동’의 하위 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번 행사 역시 김정은 시대의 ‘해외조직 활성화’ 방침에 부응하는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신보의 보도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당의 지도 아래”라는 간접적 언어를 반복한다. 참가자 수(97명)와 연령대(21~87세)를 세밀히 명시하며 ‘온 세대가 함께 하는 충성의 모임’으로 연출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조직적 결속의 상징화’를 목표로 한 것이다. 실제 산악활동의 내용이나 참가자들의 개인적 소감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인간의 자유와 자발성은 사라지고, 오직 ‘조직의 명령’과 ‘충성의 표출’만이 존재한다.
겉으로는 자연을 사랑하고 동포 간의 우정을 나누는 ‘등산모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체제 충성의 재확인 행사이자 재일조선인 사회의 ‘사상교양 현장’이다.
조선신보가 전한 기사에는 웃음이나 자연의 감동은 없고, 대신 ‘결성 30돐’, ‘총회’, ‘비약’, ‘다짐’ 같은 정치적 언어만 가득하다. 등산로의 풍경은 사라지고, 오직 김일성-김정일주의적 구호만 메아리친다.
결국 이 모임은 산이 아니라 체제의 벽을 오르는 행사였고, 그 정상에는 ‘자유의 부재’라는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