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낙태 문제에서 신뢰할 수 있는가?” 필자는 작년 가을 이 지면에서 이렇게 물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행정부 산하 식품의약국(FDA)은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의 또 다른 제네릭(복제) 의약품을 승인했다. 이 약은 현재 미국 내 전체 낙태의 최소 63%에 관여하고 있으며, 의료체계를 우회하는 이른바 ‘자가 관리 낙태(self-managed abortion)’의 급증을 이끌고 있는 약물이다.
이번 화학적 낙태유도제 승인으로 미국 내 합법적 미페프리스톤 제조업체는 두 곳에서 세 곳으로 늘었다. 이에 생명수호 진영의 지도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변인 캐롤라인 레비트는 “바이든 행정부가 굴려놓은 공은 멈출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워싱턴의 많은 이들은 조시 홀리 상원의원의 표현처럼 “FDA 국장 마티 마카리가 신뢰와 신앙을 저버렸다”고 여겼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의 피터 래핀은 이번 사태를 두고 트럼프-밴스 진영의 “친생명적 외양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사실, 트럼프-밴스 조합은 결코 진정한 ‘친생명(pro-life)’ 노선이 아니었다. 단지 ‘낙태 옹호(pro-abortion)’ 진영보다는 덜 적극적이었을 뿐이다. 래핀이 지적하듯, 밴스는 선거 이전부터 미페프리스톤 접근성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고, 트럼프 또한 선거 직후 “이를 제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이후 트럼프는 법무부에 우편 주문 낙태약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그가 콤스톡법(Comstock Act)—낙태용품의 우편 유통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좌파 비평가들에게 안심시키려는 제스처처럼 보인다.
트럼프는 본질적으로 ‘생명 옹호자’라기보다 상황적이고 즉흥적인 인물이다. 반면 가톨릭 신자인 밴스조차도 낙태약의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듯 보인다. 더구나 코로나19 시기 도입된 ‘우편 낙태’ 허용 조치 이후, 미페프리스톤의 접근성은 이미 상상 이상으로 용이해졌다. 전 세계 수많은 온라인 판매자—합법이든 불법이든—가 우편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각 주(州) 차원의 낙태 금지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 이런 현실을 인식한다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3%가 미페프리스톤의 지속적 유통을 찬성했다. 대통령이 낙태약을 금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국민 다수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한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볼 때, 미페프리스톤의 제조를 재고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윤리공공정책센터(EPPC)가 2017~2023년 사이 약 86만 5천 건의 처방보험 기록을 검토한 결과, 미페프리스톤을 이용한 ‘자가 낙태’ 여성의 11%가 패혈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겪었다.
또한 이 약은 수자원을 오염시킬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환경보호청(EPA)은 관련 조사를 회피하고 있다. 전 EPA 직원들은 “약물의 흔적이 수도관에서 검출되어 낙태금지 주(州)의 여성들에게 법적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EPA는 코로나19 시기에는 같은 기술을 사용해 지역 감염률을 감시하는 데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보다 훨씬 더 중대한 결과가 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10주 이내 태아의 95~99%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FDA의 제네릭 약물 승인은 단순한 화학이 아니라 ‘전략’에 의해 움직인다. 제네릭 미페프리스톤 승인 확대는 곧 ‘낙태 산업에 대한 시장 자유화’를 의미한다. 공급이 늘면 독점 브랜드(미페프렉스)의 수요와 가격은 떨어진다. 여러 제네릭이 유통되면, 이 약은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나 하이드록시클로로퀸처럼 평범한 약물로 인식된다. 즉, 낙태약의 접근성 확대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질문받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된다. “언제 생명이 시작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값싼 상품의 홍수 속에서 사라진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들처럼 ‘아기 살해’라는 개념에는 본능적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 본능은 임신 초기, 아직 태아의 인격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쉽게 흐려진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간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인간관(anthropology)이 결여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듯, 인간 생명은 잉태의 순간부터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하지만 화학적 낙태는 이 교리를 철저히 은폐한다. 약 한 알로, 아무도 모르게, 여성이 혼자서 결정을 내린다. “단 한 사람만의 선택”으로 착각되는 그 순간, 생명은 침묵 속에서 제거된다.
에린 홀리가 FDA 대 연합(Alliance for Hippocratic Medicine) 사건에서 대법원에 제기한 것처럼, 낙태약은 의사의 양심을 침해할 소지를 지닌다. 그러나 ‘자가 낙태’에서는 더 이상 의사도, 간호사도, 의료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과 책임은 ‘어머니의 손’에만 남겨진다.
그러나 누구도 낙태를 완전히 ‘사적 행위’로 만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미페프리스톤의 확산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낙태약이 보편화될수록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과 소송, 그리고 비극적 사례도 함께 늘어날 것이다. 11%의 사망·중증 부작용 비율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실제 여성들의 피와 눈물로 환산될 수 있는 수치이다.
물론 현대 의학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으며, 이를 보상하기 위한 ‘의료 과실 보험’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가 낙태 여성은 다르다. 병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없다. 어떤 의료진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설령 약이 ‘의도한 대로’ 작용해 아기가 사망했더라도, 그 죽음의 행위자는 오직 한 사람—어머니 자신이다.
“약의 성질을 몰랐다”, “결정이 잘못이었다”, “후회한다”… 아무런 변명도 생명을 되돌릴 수 없다. FDA는 지금 여성들에게 “통제받지 않는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죽음의 도구를 자신의 손에 쥐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양심과 생명의 가르침을 떠난, 무한한 책임의 굴레이다.
여성은 이런 ‘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선택’을 감당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생명은 선택이 아니라 선물이며,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법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FDA가 부추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속박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