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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예배드리는 교황과 찰스 3세 |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가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갈라선 지 약 500년 만에, 양 교회의 상징적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교황 레오 14세와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23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예배를 공동으로 봉헌하며, 오랜 분열의 상처 위에 화해의 기도를 올렸다.
“기독교 신앙의 유대 회복을 상징하는 제스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번 공동 예배를 두고 “기독교 신앙 내 유대 관계 회복을 상징하는 제스처”라며 “헨리 8세의 수장령 이후 500년 만의 역사적 기도”라고 평가했다. BBC 또한 “영국 교회가 로마와 분열한 지 거의 5세기가 지난 지금, 두 신앙 공동체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고 보도했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는 찰스 3세 국왕 부부를 비롯해 양국 외교사절과 교회 관계자들이 자리했으며, 예배는 교황 레오 14세의 집전 아래 엄숙하게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니케아 신경을 함께 낭독하고, 전 세계의 평화와 환경 보호를 위한 공동 기도를 올렸다.
“익숙해지게 마련” — 교황과 국왕의 유쾌한 대화
예배 전, 교황과 국왕은 비공식 환담을 가졌다. 찰스 3세는 “이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인사했고, 기념사진 촬영 중 “이 모든 카메라가 위험 요소입니다”라고 농담을 던지자, 교황은 미소를 지으며 “익숙해지게 마련이지요”라고 답했다.
양측은 선물도 교환했다. 찰스 3세는 신앙심 깊은 잉글랜드의 ‘고백왕’ 성 에드워드의 성화를 교황에게 전달했고, 레오 14세는 시칠리아 대성당의 모자이크 ‘전능하신 그리스도’ 축소판을 답례로 선물했다.
예배 후 레오 14세와 찰스 3세는 환경 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기후 변화 대응과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의 정신을 잇는 동시에, 찰스 3세의 오랜 환경운동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성 바오로 대성당의 ‘왕실 좌석’, 후계자에게도 남겨져
찰스 3세 부부는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도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국왕의 종교 간 화합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왕실 전용 좌석’이 마련됐으며, 이 좌석은 찰스 3세의 후계자들에게도 영구히 남겨질 예정이다.
성 바오로 대성당은 베네딕토회 수도원 본원이자, 영국 왕실이 수 세기 동안 성 바오로의 무덤 관리에 후원을 해온 전통을 지닌 곳이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찰스 3세는 ‘왕실 형제회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영국은 답례로 교황 레오 14세에게 윈저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의 ‘교황 형제회 회원’ 명예를 부여했다.
“화해의 기도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
이번 공동 예배는 애초 4월로 예정되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로 연기됐다. 대신 찰스 3세는 당시 이탈리아를 방문해 교황을 문병하며 연대를 표시했다.
이날 예배를 끝으로 레오 14세와 찰스 3세는 각자의 교회가 공유하는 공통 유산—인간 존엄, 창조 보전, 신앙의 일치—을 재확인했다.
바티칸의 한 관계자는 “오늘의 기도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하나 되려는 여정의 첫걸음”이라며 “교황과 국왕이 함께 바친 기도는 기독교 세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고 전했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