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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21 |
노동신문은 최근 평양종합인쇄공장 창립 80주년을 맞아 “우리 당의 위력한 출판인쇄기지로서의 본분을 다해온 긍지높은 행로”라는 제목의 장문의 찬양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인쇄공업의 발전사라기보다, ‘출판’을 사상통제의 병기창으로 신격화한 정치문서에 가깝다. 신문은 “당의 붉은 당기를 추켜들던 그때 이미 출판인쇄기지가 태어났다”며 이 공장을 ‘사상의 무기 생산지’로 규정한다. 이는 출판의 본질을 ‘표현의 자유’나 ‘지식의 전파’가 아닌, 당의 교리 보급과 충성심 재생산의 수단으로만 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기사는 평양종합인쇄공장이 “어떤 과업도 손색없이 수행한다”고 자찬하지만, 실제로 언급되는 ‘성과’는 모두 충성심 경쟁과 정치행사 참여에 집중돼 있다. “당중앙위원회 축하문 하달”, “영광의 기념사진 촬영”, “당창건 80돐 경축행사 참가” 등이 주된 내용으로, 생산성·품질·기술혁신에 관한 실질적 정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출판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혁신성과”라는 표현조차 구체적 기술이나 설비의 내용은 빠져 있다. 이는 북한 산업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기술적 근대화보다 정치적 충성의 우선화를 다시금 확인시킨다.
북한에서 출판 인쇄의 기능은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아니라, 단일한 세계관을 주입하는 체제 유지 도구로 한정되어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불후의 고전적 로작’, ‘항일빨찌산 회상기’, ‘천리마시대 사람들’ 등은 모두 역사적 신화와 우상화를 강화하는 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이처럼 출판이 ‘사상의 무기’로만 기능할 때, 지식은 발전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인쇄기의 소리는 다양성을 퍼뜨리는 잉크의 리듬이 아니라, 동일한 구호를 복제하는 규율의 박자가 된다.
노동신문은 이 공장을 “우리 인쇄공업의 맏아들”로 칭송하지만, 그 ‘영예’는 인민의 표현권 확대나 문화적 풍요와는 무관하다. 80년의 역사는 실상, 수많은 사상교양자료·당문헌·지도자 어록집을 찍어내며 사상 독점체제를 강화해온 시간이었다.
이는 세계가 디지털 혁신과 지식의 개방으로 나아가는 사이, 북한이 여전히 ‘사상의 활자 공장’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한다.
노동신문의 이번 기사는 출판과 인쇄를 기술·산업의 영역이 아니라, 이념과 충성의 영역으로만 다루는 전형적인 체제선전이다. 그러나 ‘출판’의 본질은 권력의 명령을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자유의 행위다.
평양종합인쇄공장의 80년은 ‘책의 역사’라기보다, 사상의 다양성이 봉쇄된 80년의 기록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출판 강국”이라 불리려면, 지도자의 어록 대신 인민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인쇄되는 날이 먼저 와야 할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