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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122 |
조선중앙통신이 10월 24일 보도한 김정은의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 방문은, 겉으로는 ‘전우의 피로 맺어진 조중친선’을 기리는 의례이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북·중 밀착 관계를 미화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극이다.
김정은은 이른바 “조선전선참전 75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과의 ‘혈맹’ 이미지를 재연출하고 있으나, 이는 현실의 불균형한 종속관계를 은폐하려는 의도에 가깝다.
1950년대의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 인민’의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전략적 계산과 마오쩌둥의 혁명 정당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전쟁도구였다. 그 피의 동맹은 사실상 북한 체제의 ‘생명 연장 장치’였으며, 오늘날 김정은 정권은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 ‘새로운 안보 동맹’으로 포장하고 있다.
김정은이 외무상 최선희, 당 비서 조용원·박정천·김덕훈 등을 대동해 헌화하고 묵념하는 장면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이는 베이징에 대한 ‘정치적 충성 서약’이자, 최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과시 이후 중국의 불편한 시선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로 읽힌다.
특히 김정은이 모안영 묘에 별도의 헌화를 한 것은 상징적이다. 모안영은 마오쩌둥의 장남으로, 김일성 체제의 생존을 위해 희생된 인물이다. 김정은의 헌화는 ‘조중 혈맹의 피의 유산’을 다시 불러내며 중국 공산당에 ‘우리는 변치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적 연출이다.
조선중앙통신은 “피로써 맺어진 조중친선은 앞으로도 불패의 생명력을 과시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의 북중 관계는 동등한 우의라기보다 ‘경제·외교적 종속’의 형태에 가깝다.
북한은 원유·식량·의약품 등 생존 필수물자에서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로의 무기 지원 확대가 국제 제재의 타깃이 되자, 다시 중국에 ‘균형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김정은의 회창행은 바로 그 외교적 균형조정의 연극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매체가 반복하는 “반제자주, 사회주의 위업의 성스러운 투쟁”이라는 구호는 1950년대 냉전의 언어를 그대로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 김정은 정권은 인민의 빈곤, 식량난, 산업붕괴라는 현실을 ‘항미원조의 피’라는 상징으로 덮으려 한다.
그러나 오늘의 조중 관계는 ‘혁명 전우의 연대’가 아니라, 국제 제재망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북한의 외교적 자구책에 불과하다.
김정은의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 참배는 역사적 감사를 빙자한 정치적 연출이다. 75년 전의 전쟁이 ‘혈맹의 신화’를 낳았다면, 2025년의 참배는 ‘예속의 현실’을 감추기 위한 장막이다.
오늘의 북한이 진정으로 기려야 할 것은 ‘형제의 피’가 아니라, 그 피가 낭비되지 않도록 평화를 지키는 책임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과거의 전쟁 유산 위에서 새로운 불안과 충성을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