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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23 |
노동신문이 소개한 ‘속보를 통한 교양’은 일견 현장 근로자들의 열의를 고취시키는 창의적 선전활동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실상은 자율적 의사소통이 아니라 집단적 감시 체계의 강화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속보 교환”은 서로의 성과를 경쟁적으로 게시하고, “부탁”과 “호응”이라는 형식을 빌려 성과압박과 감정적 충성 유도를 제도화한 방식이다. 이는 공산권 특유의 ‘비판-자기비판 문화’를 ‘현장 성과’의 언어로 재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분산작업을 하는 중대들 사이에 속보를 교환했다”는 대목은 실제로는 각 단위가 서로를 평가·감시하는 수평적 통제망을 구축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런 방식의 ‘정신력 앙양’은 생산성과 창의의 결과가 아니라, 공포와 비교심리를 통한 강제 동원의 부산물이다.
기사 후반부의 「군중과의 교감을 우선시할 때」에서는 ‘강연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현장 언어와 속담, 문학 인용을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역시 진정한 쌍방 교류가 아닌, 감정적 설득술에 불과하다. 강연자는 청중의 언어를 흉내내지만, 청중의 사유를 듣지 않는다. 이는 공감이 아니라 ‘심리적 침투’다.
‘입말을 새겨두었다가 강연에 구현했다’는 표현은 언어 감수성이 아니라, 체제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한 언어 전략화를 뜻한다. 말과 감정, 일상적 표현까지 선전의 도구로 전유하는 북한식 ‘감정 통치’의 전형이다.
노동신문은 “선전선동의 형식과 방법을 부단히 개선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 ‘개선’이란 기술적 진보나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사상 통제의 효율화를 의미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속보 교환’은 온라인 보고 체계로, ‘강연 교감’은 개인 맞춤형 선전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즉, 북한의 선전선동 경험담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사회공학 실험의 일부이다.
결국 이 기사는 ‘정신력 발동’을 “단위발전의 열쇠”로 제시하지만, 이는 체제의 구조적 비효율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구호다. 기술·자원·관리의 부족을 개인의 정신력으로 메우게 하는 구조,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열의 부족’으로 돌리는 구조야말로 북한식 사회주의 동원의 본질이다.
‘속보’와 ‘교감’이 넘쳐날수록, 자율적 사고와 내적 자유는 말라간다. 노동신문이 찬미하는 선전선동의 ‘경험’은 곧 인민의 침묵과 자기검열의 경험이기도 하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