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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24 |
노동신문이 “직동과 천성의 탄전들에 혁신의 기상 나래친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생산적 앙양’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력 착취가 강화되는 현장이다.
보도는 ‘일군들이 막장에 좌지를 정했다’며 간부들이 현장으로 내려가 ‘정치사업’을 지도하고 ‘조직정비’를 독려한다고 포장하지만, 이는 자발적 동참이 아닌 강제적 동원에 가깝다.
당의 ‘증산 목표’는 곧 정치적 충성 경쟁의 지표로 기능하며, 노동자들에게는 ‘목숨을 건 실적 경쟁’을 강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신문은 “하루 계획의 130% 이상 수행”이나 “새 기록창조”를 자랑하지만, 이는 설비 노후화와 안전 미비 속에서 무리한 작업강도를 정당화하는 선전이다.
노동자들이 ‘불리한 조건을 유리하게 전변시켰다’는 표현은, 곧 안전장치나 환기시설이 부실한 상황에서도 작업을 멈출 수 없는 현실을 은폐한다. ‘교대가 교대를 돕는 집단주의 기풍’ 역시 사실상 초과근무를 의미하며, 대체 인력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체제를 미화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천성청년탄광의 ‘기술혁신운동’을 찬양하지만, 그 실체는 제도적 연구나 과학기술 발전이 아닌, 현장 기술자들의 자구책에 불과하다. ‘벨트콘베아 정상가동’ 같은 성과는 단기적 응급조치일 뿐, 근본적인 설비 현대화나 에너지 효율 개선과는 무관하다.
기술혁신이 ‘대중적 운동’으로 포장되는 것은, 국가가 구조적 투자 대신 ‘충성 경쟁’으로 문제 해결을 대체하는 북한식 기술정책의 단면이다.
순천탄광기계공장의 ‘수백 대 탄차 생산 결의’는 계획경제의 낡은 유물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앙양된 기세”는 실적압박의 결과이며, ‘예비와 가능성의 탐구’라는 표현은 자재 부족과 전력난 속 임기응변을 뜻한다.
“전기를 절약하면서도 더 많은 차바퀴를 생산한다”는 표현은 기술 혁신이 아닌 전력 배급 축소와 노동 강도의 증가를 가리킨다.
이 모든 선전은 “당 제9차대회를 자랑찬 로력적 성과로 맞이하자”는 정치 구호에 종속돼 있다. 석탄 생산량은 실제 경제지표라기보다 충성심을 측정하는 도구이며, 생산 현장은 ‘혁신’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무용담’의 배경으로 소비된다. 석탄공업부문의 ‘혁명적 투쟁’은 결국 김정은 체제의 상징적 충성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노동신문이 묘사하는 “혁신의 기상”은 사실상 피로와 위험, 그리고 절망이 뒤섞인 ‘강제동원의 언어’다. 북한의 탄전은 에너지 자립의 상징이 아니라, 경제 실패와 체제 유지를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석탄의 불길’이 아니라, ‘체제의 연명’을 위한 불길이 오늘도 막장에서 타오르고 있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