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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24 |
조선신보가 10월 27일 보도한 대동강맥주공장의 신제품 개발 기사는 겉보기엔 경제 활력과 소비문화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체제 선전의 전형적인 포장에 불과하다.
‘9번부터 13번까지의 신제품’과 ‘과일맥주, IPA’라는 표현은 세계적 트렌드를 모방하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생활 향상’이라는 구호를 정치적 안정 선전에 동원하는 체제의 오래된 패턴이 드러난다.
북한은 1번부터 8번까지의 맥주에 이어 9~13번 제품을 내놓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실질적인 시장 경쟁이나 소비자 선택권 확대의 결과가 아니다. 모든 생산과 유통이 당국의 계획과 허가 아래 통제되는 체제에서 “국민이 즐겨 찾는 제품”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경공업제품전시회 ‘경공업발전–2025’에서 시음용으로 제공된 맥주는 내수시장보다는 대외 선전용 ‘시범상품’에 가깝다. 외국인 방문객과 일부 평양 특권층을 대상으로 ‘경제 활성화의 상징’을 연출하기 위한 무대 장치일 뿐, 일반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맥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제’로서 기능해왔다. 경제난과 단전, 식량난이 반복되는 가운데, 평양의 맥주집과 소주 소비는 주민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탈정치적 배출구’로 이용된다.
이번 신제품 개발 보도도 마찬가지다. “밀맥주를 맛보지 못하면 후회한다”는 문장은 개인의 욕망을 정치적 충성심과 연결시키는 수법이다.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조차 국가가 허락하고 지도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북한식 ‘소비 통제’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보리 70%, 백미 30%’라는 세부 배합비율이 강조된 것은 기술적 성취라기보다 원료 확보의 어려움을 반증한다. 북한의 양조산업은 수입 효모, 포장재, 청량가스 등에 의존하고 있으며, 제재 이후 공급망이 불안정해지자 쌀과 보리의 비율 조정을 통해 ‘국산화’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품질 개선이라기보다 원가 절감을 위한 절충이다.
이 기사는 단순한 소비문화 기사로 읽히지만, 사실상 김정은 체제의 경제성과 홍보에 동원된 정치 텍스트다.
우선 ‘국산 제품 다변화’를 내세워 제재에도 끄떡없는 경제 자립 이미지를 조성하며, 둘째, 주민의 ‘생활 향상’을 강조해 내부 결속을 유도한다. 이어 외국 언론을 겨냥해 ‘문화적 정상국가’ 이미지를 세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식량난, 전력난, 산업 기반 붕괴가 여전하며, 평양 이외 지역의 공장들은 대부분 가동률 30% 미만이다.
대동강맥주는 북한 체제의 상징적 거울이다. 겉보기엔 풍요롭고 세련된 맥주잔 속 거품이지만, 그 속에는 통제된 소비, 빈약한 산업, 그리고 인민의 자유를 빼앗은 체제의 허기가 고여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새로운 맥주’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공포와 선전’으로 가득 찬 체제의 병 속에서 자유를 발효시켜야 할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