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62] 인공지능(AI) 포르노의 시대가 도래했다.
  • 사무엘 D. 제임스 Samuel D. James is director of content development at Crossway and writes regularly at Digital Liturgies. He’s the author of Digital Liturgies: Rediscovering Christian Wisdom in an Online Age. Crossway 콘텐츠 개발국장

  • ChatGPT의 운영사인 OpenAI의 CEO 샘 올트먼은 최근 자사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곧 성적(性的) 콘텐츠 생성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X(前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12월부터 연령 제한 시스템이 완비되면, ‘성인 이용자를 성인으로 대우한다’는 원칙 아래 검증된 성인들에게 에로티카를 포함한 더 많은 콘텐츠 생성을 허용할 것이다.”

    일부 이용자들이 비판하자, 올트먼은 한층 더 강경하게 대응했다. “요청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물을 받지 않게 될 겁니다.”

    이 발표의 역설은, 그가 같은 글 안에서 ‘고객의 정신적 복리를 책임 있게 돌보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에 있다. 올트먼은 그동안 ChatGPT의 제한 정책이 “정신건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시인하면서도, 이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용자들이 더 많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올트먼의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포르노그래피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들에게조차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정신적 병리의 원인이다.

    『하퍼스(Harper’s)』 2025년 11월호에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보고서가 실렸다. 다니엘 콜리츠는 ‘gooner’라 불리는 집단—자신을 ‘자랑스러운 포르노 중독자’로 규정하며, 삶과 가정, 인간관계를 자위행위 중심으로 재구성한 젊은 남성들—을 추적한다.

    콜리츠가 만난 이들은 현실의 여성 세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포르노와 자위를 ‘구원자’로 삼는다. 그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렇게 요약한다. “편집 영상은 클라미디아(박테리아성 성병)를 옮기지 않는다. 압축 파일은 남성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한 젊은이는 조심스레 고백한다. “그냥 너무 피곤해요. 서로에게 다요.”

    이 글은 포르노가 초래하는 정신적 해리와 우울의 메커니즘을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낸 사례 중 하나다. 이제 대형 인공지능 기업들이 광고 수익을 좇아 사용자가 스스로 성적 왜곡을 생성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공공 정신건강의 돌봄이 아니라 그 파괴에 대한 탐욕스러운 방관이다. 이 정책은 실리콘밸리의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유토피아적 신화를 의심해온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교육자이자 작가인 캘 뉴포트는 최근 뉴스레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OpenAI의 행태는 자사의 기술이 그리 혁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기업의 모습이다. 세상을 바꾸는 대신, 수십 년간 인터넷이 쫓아온 ‘주의경제(Attention Economy)’의 돈줄을 뒤쫓고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은 수백억 달러의 투자를 쏟아부어 ‘현대사에서 가장 중대한 발명’을 이루려 했지만, 결국 그것이 새 세상을 창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달은 회사의 행동이다.”

    AI가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할 것이라는 온갖 홍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주요 용도는 포르노와 숙제인 듯하다. 물론 앞으로 더 광범위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뉴포트의 진단은 정곡을 찌른다. 진정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클릭 장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올트먼의 발언은 많은 이들이 예견해온 사실—AI 포르노그래피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제 누구나 맞춤형 이미지나 영상을 생성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훨씬 강렬하고 개인화된 중독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사용자는 실제 인물의 사진을 입력해 그 사람의 얼굴로 음란물을 합성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심각한 법적·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AI 포르노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포르노 비판 논리를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기존의 “착취된 여성에 대한 호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화면 속 인물이 가상의 존재라면, 피해자 윤리를 강조하는 논증은 힘을 잃는다.

    앞으로 유효할 주장은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차원, 즉, 혼인 안에서의 성의 선함과 허구적 성의 소비가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내면으로 붕괴시키는 죄임을 강조하는 교리적 관점일 것이다. “저 인물도 누군가의 자녀다”라는 말은 이제 “당신 또한 하느님의 자녀다”로 바뀌어야 한다.

    OpenAI의 친(親)포르노 정책은 불행히도 다가올 현실의 전조에 불과하다. ‘용감한 신세계’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신학적·도덕적 성찰뿐 아니라, 분명하고 적극적인 정치적 대응이다.

    정의감 있는 입법자들은 “청소년 보호”라는 공허한 명분이 20년째 공염불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

    가정은 기술을 가정의 공적 공간으로 이동시키고, 자녀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인간의 몸과 성의 선함, 그리고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 사이의 실재적 혼인 사랑을 대담하게 가르치고 선포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0-30 07:04]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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