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63] 시의적절한 기념일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Washington, D.C.’s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워싱턴 D.C. 윤리 및 공공정책 센터 수석 연구원

  •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년 10월 28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문, 즉 라틴어 원문 첫머리의 말로 불리는 「노스트라 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에」)를 채택하였고,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이를 반포하셨다.

    필자의 저서 「세상을 성화하기 위하여(To Sanctify the World):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생명력 있는 유산」 에서 이 문헌이 공의회 안에서 거쳐간 때로는 험난한 여정을 상세히 다루었다. 여기서는 다만, 일부 아랍 국가들이 유대 민족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실재와 영속성을 인정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던 사태가 공의회의 논의에 개입되어 일정한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점만 지적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교황 비오 12세의 고해사제였던 독일 성서학자 아우구스티누스 베아 추기경(S.J.)의 불굴의 헌신 덕분이기도 한데, 「노스트라 에타테」는 마침내 공의회의 종착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날 반유대주의라는 문화적 암이 재확산되는 현실을 생각할 때, 하느님께 참으로 감사드릴 일이다.

    최근 찰리 커크의 추도식에서 터커 칼슨은 예수의 죽음을 “후무스 먹는 자들(hummus-eaters)”의 탓으로 돌리며 추악함의 경사길을 더욱 내리달렸다. 그러하기에 가톨릭교회가 「노스트라 에타테」 안에서 엄숙히 천명한 바를 우리가 다시금 상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그리스도 시대의 모든 유대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또한 오늘날의 유대인들을, 그분의 수난 중에 저질러진 죄로 단죄할 수 없으며,” 또한 “교회는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근원에서 나오든, 유대인을 향한 모든 증오, 박해, 그리고 반유대주의적 행위를 개탄한다” 는 선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유대교로부터 받은 신앙적 부채(宗敎的 債務)를 겸허히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기 믿음의 시작과 선택이 이미 족장들과 모세, 그리고 예언자들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 곧 ‘믿음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들’(갈라디아서 3장 7절 참조)은 모두 동일한 족장의 부르심 안에 속한다고 고백한다. 또한 교회의 구원이, 선택된 백성이 종살이의 땅에서 탈출한 사건 안에서 신비롭게 예형(豫形)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형언할 수 없는 자비로 맺으신 옛 계약을 통하여 구약의 계시를 그 백성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또한 교회는 그 잘 가꾸어진 올리브나무의 뿌리로부터 양식을 얻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 거기에 야생 가지들, 곧 이방인들이 접붙여졌기 때문이다(로마서 11장 17–24절 참조).”

    “교회는 언제나 사도 바오로가 동족에 관하여 한 말을 기억한다.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계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로마서 9장 4–5절).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한 사도들과 초대 제자들의 다수가 유대 백성에게서 나왔음을 기억한다. 교회는 예언자들과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하느님만이 아시는 그 날을 기다린다. 그 날에는 모든 민족이 한 목소리로 주님을 부르게 될 것이다.”

    지난달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캠퍼스에서의 강연에서 필자가 언급했듯이, 반유대주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배반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혐오는 곧 그리스도 혐오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나자렛 예수님을 유대 백성과의 계약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신 하느님의 아들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분의 정체성 자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는 시편 22편을 인용하시며 “주님께 다스림이 있고, 주님은 민족들을 다스리시며, 땅의 모든 강대자들이 그 앞에 엎드릴 것이다”라는 승리의 고백을 불러일으키셨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라는 어머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없이는 이해될 수 없으며, 유대교라는 토대와 끈이 부재하다면 그리스도교는 고대 세계의 수많은 신비종교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을 것이다.

    예수 나자렛은 기적을 행한 갈릴래아의 성인으로 남았을 뿐, 신비주의 철학자 아폴로니우스 티아나와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전락했을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진리를 명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역사적 유년기에 이미, 구약을 멸시하며 히브리 성경의 하느님을 왜곡된 우상으로 묘사한 마르키온주의 이단(Marcionism)을 단호히 배격하였다.

    반유대주의는 사회적 악성종양이다. 근대 정치사의 궤적 속에서, 반유대주의의 확산은 언제나 문화적 부패의 확실한 징후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치가 문화의 흐름을 뒤따른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러한 문화적 붕괴가 야기하는 공적 결과는 역사 속에서 보아왔듯 가혹하기 그지없다.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의 드레퓌스 사건에서 분출된 광기, 바이마르 독일의 문화 붕괴가 낳은 집단학살의 정치적 귀결,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광기 어린 야만행위에 이르기까지—모두가 그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21세기 서구가 이러한 정치적 광풍으로부터 면역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며 경각심의 결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스트라 에타테」 반포 60주년, 곧 다이아몬드 주년을 맞이하여, 반유대주의라는 악에 열려 있는 오버턴 창문을 단호히 닫고, 못으로 단단히 봉인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0-31 08:33]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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