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0월, 프랑스의 오컬티스트 파푸스(Papus)는 알렉산드르 궁전의 대리석과 금빛 장식 속에서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 침묵 속에 앉아 있는 가운데, 그 마술사는 니콜라이의 선왕 알렉산드르 3세의 영혼을 불러냈다.
두려움을 억누르며 니콜라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폐하, 혁명과 자유주의의 물결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환된 영혼이 대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이 혁명을 진압하라. 그러나 기억하라, 그것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제정 러시아 주재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팔레올로그의 일기에 전해진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성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가 황실 내부에서 새어 나와 러시아 사회를 떠돌았다는 사실 자체가 황제의 친위 권력 내에 심각한 균열이 있음을 시사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경건한 정교 신자였으나, 동시에 신비주의적 체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전통적 영성 대신 강신술, 탁자 돌리기, 예언자나 ‘거룩한 광인(holy fool)’과의 교통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그리고리 라스푸틴이었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하느님의 현존을 인간의 의지로 조작하려는 ‘거짓 영성’, 곧 거짓 신비주의의 전형이었다. 참된 신비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하는 명상의 길이지만, 황실의 신비주의는 오히려 불안과 권력욕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 마술 행위였다.
1917년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여러 관점에서 분석해왔다. 1904년 러일전쟁의 참패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분명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1905년 제1차 혁명으로 인해 황제가 ‘10월 선언’을 발표하고 입헌 제도를 허용한 사건이 그의 권위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 모든 정치적 위기 뒤에는 영적 혼란이 있었다. 황제 부부의 신비주의적 집착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신적 질서 대신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찾으려는 자율적 구원론(pelagianism)의 한 형태였다. 그로 인해 왕권의 신성성과 도덕적 권위가 붕괴되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 귀족 사회는 프랑스와 독일, 영국 문화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과학과 철학, 예술의 기준은 서구였다. 그러나 정교회의 영적 권위가 약화되자 귀족층은 ‘새로운 영성’을 갈망했다. 그것은 참된 신앙의 부흥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과 초월적 쾌락을 혼동한 데카당스적 신비주의였다.
프랑스의 퇴폐문학과 상징주의는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다. 시인 발레리 브류소프와 콘스탄틴 발몬트, 그리고 훗날의 파스테르나크와 블로크 등이 ‘은시대’라 불리는 문학 운동 속에서 영적 체험을 예술적 실험과 결합했다. 그러나 그 ‘영성’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gnosis(비밀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교만이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 번성한 강신술(Spiritualism)은 곧 유럽으로 퍼졌다. 1848년 폭스 자매가 죽은 자의 영과 교통했다고 주장한 이후, 신지학(Theosophy)을 창시한 엘레나 블라바츠키가 등장했다. 그녀는 “영과 물질은 불가분의 하나”라 주장하며, 윤회와 업보를 설교했다. 그러나 이는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하고 피조물 안에서 스스로 신성을 찾으려는 이단적 영지주의(gnosticism)였다.
19세기 말 페테르부르크의 귀족 살롱에서는 신비주의가 일종의 사교 패션이 되었다. 메레시콥스키 부부의 살롱에는 작가와 시인, 철학자들이 모여 ‘영적 실험’을 논했다. 그들은 프랑스 상징주의, 독일 형이상학, 오컬트 의식을 혼합하며 “새로운 계시”를 꿈꾸었다.
한편, 「레부스(Rebus)」라는 잡지가 강신술과 심령술의 방법을 공개하며 영적 세계의 ‘기적 현상’을 보도했다.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조차 성령의 신비가 아닌 영적 혼돈이 확산되었다.
귀족 사회가 세련된 오컬트에 빠져 있을 때, 러시아 농민의 신앙은 정교 신앙과 민속적 주술이 뒤섞인 혼합종교(syncretism)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단적 집단 ‘흘리스트(Хлысты)’는 ‘신과의 합일’을 명분으로 황홀경 속에서 집단적 방탕을 벌였다.
교회는 이런 행위를 미신과 성사 모독으로 단죄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황실의 강신술은 이런 농민 이단보다 덜 비판받았다. 이는 교회가 국가 권력 아래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도중 군중 압사 사건이 발생해 1,300명이 사망했다. 황제는 즉시 연회를 중단하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그날 밤 외교 무도회에 참석했다. 국민들은 ‘피 묻은 춤’이라 부르며 분노했다. 이 사건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겸손한 성찰이 아니라,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그 불안 속에서 알렉산드라 황후는 끊임없이 남아를 얻기 위한 예언과 기적을 찾아 헤맸다. 그녀는 농민 예언자 마뜨료나, 수도자 파샤, 그리고 프랑스의 영매 필리프(Philippe) 등을 차례로 받아들였다. 1902년 필리프는 황후가 곧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 예언했으나, 그 ‘임신’은 유산으로 발표된 가짜 임신으로 끝났다. 가톨릭의 교부들이 말하듯, 이는 “사탄이 위안을 가장한 기만의 영”이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 출신의 평민으로, 정규 수도자가 아닌 방랑 예언자였다. 그는 은총의 신비가 아니라 감각의 도취를 통해 구원을 약속했다. 그는 “하느님과의 일체”를 말하며 여성 신자들과 감각적 의식을 행했고, ‘신비적 치료’를 자처했다. 교회의 시각에서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였다.
처음에는 보수적 성직자들이 그를 황제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라스푸틴이 황실에 신앙의 단순함을 회복시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노인(starets)’은 곧 그들을 도구로 삼았다.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부적’이라며 수건과 빗을 주었다. 그는 황후의 불안을 어루만지며, “검은 독수리는 제국의 기쁨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황후는 그를 ‘우리의 친구’라 불렀고, 그는 황제 부부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칭했다.
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 알렉세이를 ‘기도와 최면’으로 달랬고, 심지어 전보 한 통으로 출혈이 멎었다는 전설이 돌았다. 이것은 단순한 최면이 아니라, 절박한 신앙이 왜곡되어 만들어낸 심리적 기적이었다.
라스푸틴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자 귀족사회와 언론은 격렬히 반발했다. 1910년 라스푸틴을 처음 소개했던 신부 테오판은 그를 ‘육욕의 이단’이라 규탄했다. 혁명 전야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음모와 풍문으로 들끓었고, 황실의 신성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1915년 니콜라이는 전선 사령부로 이동하며, 페테르부르크의 정치를 황후와 라스푸틴에게 맡겼다. 이는 교회의 언어로 말하자면, “은총의 질서에서 벗어난 불순명 ”이었다. 라스푸틴이 결국 1916년 귀족들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그 살인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왕권의 도덕적 권위가 무너졌음을 의미했다.
1917년 2월 혁명은 거의 무혈의 왕정 붕괴였다. 니콜라이 2세의 퇴위는 신학적으로 말해 ‘자기 권위의 부정’이었다. 그해 10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등장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유럽을 떠돌던 또 다른 영—공산주의의 망령—을 러시아에 불러냈다. 정통 신앙이 무너진 자리에,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신론적 종교(atheistic religiosity)가 들어섰다.
니콜라이 2세는 영적으로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으며, 신앙의 언어와 미신의 언어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의 정통 신앙에 대한 충성과 신비주의에 대한 집착은 결국 이성(logos)의 자리를 감정(pathos)으로 대체하였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할 자리가 인간의 의식 실험으로 점령되었을 때, 제국의 멸망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렇다. 황실은 하늘의 영을 불러내려 했으나, 실제로 불러낸 것은 공산주의라는 악령이었다. 그 결과, “하느님 없는 세계”라는 20세기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몰락은 단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영적 식별의 실패였다. 교회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는 거짓 예언과 미신적 신앙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한 결과였다. 황제가 초자연적 힘을 통치의 근거로 삼으려 한 순간, 제국은 이미 ‘은총의 질서’ 밖으로 떨어졌다.
니콜라이 2세의 운명은 “이성이 결여된 신앙은 광신으로, 신앙이 결여된 이성은 냉소로”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의 몰락은 교회가 언제나 상기해야 할 진리를 드러낸다.
참된 영성은 인간이 신비를 조작하는 기술이 아니라, 신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순명(順命)의 행위라는 것을.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