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66] 거짓된 애국자들
  • 리엘 라이보비츠 Liel Leibovitz is editor at large for Tablet Magazine and the cohost of its popular podcast, Unorthodox. Tablet Magazine 수석편집자

  • 2024년 11월 5일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가운데 하나였다. 필자를 포함한 77,302,580명의 미국인들은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 나라가 파국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무단으로 유입되고,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깃발이 나부꼈으며, 이란과 그 테러망은 달래주고, 이스라엘 같은 미국의 동맹들은 비난받았다. 아이들은 급진적 성정체성 이데올로기를 밀어붙이며 신체 훼손을 옹호하는 광신적 이념가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목록은 끝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은 단순한 선거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적 가치의 심오한 확인이자, 신앙과 가정, 조국을 파괴하려는 좌파의 광기에 대한 명확한 거부였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을 때, 필자는 “미국의 아침이 다시 밝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대통령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트럼프는 10개월 동안 전례 없는 문명 회복의 프로젝트를 놀라운 성공으로 추진했다. 불법 체류자들을 체포·추방하고, 무질서에 빠진 도시들에 주방위군을 투입해 질서를 회복했으며,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하고, 폭력을 선동하며 자유로운 탐구를 억압하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성과를 환호하기는커녕, 많은 이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미국 그 자체에도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나라를 사악한 세력에 조종당하는 타락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분별력을 지녀야 할 고위 정치인들마저 이러한 어둠의 시선—좌파의 미국 혐오와 절망주의의 거울상—으로 기울고 있다.

    모든 문화적 병리 현상이 그렇듯, 이 현상 또한 실시간으로 전개되기에 정확히 포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증거는 압도적이다.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게 전개된다.

    처음에는 괴짜들이 있었고, 그 괴짜들이 광기에 빠졌다. 닉 푸엔테스를 보라. 그는 영향력 있는 팟캐스터이자 홀로코스트 수정주의를 즐기는 인물로, 2022년 트럼프와 마러라고에서 식사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2024년 선거를 앞두고 그는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는 유대인과 동성애자들로 채워질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그는 이제 트럼프를 “이상한 사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 부르고, 10월 7일의 이스라엘 사태를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으로 매도하며 가자 지구의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한다.

    이런 미친 헛소리는 단지 한 구석의 일탈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또 다른 예를 들겠다. 캔디스 오언스. 현대 우파의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 중 하나다. 2018년 그녀는 트럼프를 “자유세계의 구세주”라고 칭송했다. 2024년에도 대통령과 환히 웃는 사진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트럼프를 “만성적인 실망”이라 부르고, 찰리 커크 암살 사건 뒤에 “이스라엘의 음모”가 있다고 추측한다.

    그녀도 무시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두 명, 혹은 네 명, 여덟 명의 소셜미디어 논객이 있다고 해서 하나의 운동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가 예전과는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럼 이제 터커 칼슨을 보자.

    사실을 고백하자면, 필자는 한때 칼슨을 좋아했다. 그는 매우 유쾌하고 열정적이며 위대한 미국의 대의에 헌신한 사람이라 믿었다. 때때로 유대인 투자자 몇몇에게—그들만에게—미국 경제의 모든 문제를 돌리는 듯한 괴상한 발언을 해도, 필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방송에도 출연했고, 이후 그와 친근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기 시작했다. 2024년 초, 칼슨은 러시아로 향했다. 그는 모스크바 거리를 걸으며 “이런 청결함과 질서는 낡고 비참한 미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감탄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유순한’ 인터뷰에서, 폴란드가 독일을 도발해 1939년 침공을 불러왔다는 푸틴의 왜곡된 유럽사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를 일회성 사건이라 할 수도 있다. 러시아 지도자의 생각을 미국 대중이 아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칼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 인터넷 공간에서 자칭 “역사가” 대릴 쿠퍼를 초대했다. 쿠퍼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수십 년간 미국이 거짓말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악인은 히틀러가 아니라, “언론과 자본을 지배하는 이름 없는 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윈스턴 처칠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칼슨의 사고의 방향을 보라. 그는 러시아나 중국, 미국의 실제 적들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2025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벤 샤피로 같은 이들은 자국이 위험에 빠지고 있는데 외국의 분쟁에만 몰두한다”며 “그들이 얼마나 미국에 무관심한지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칼슨은 수많은 반이스라엘 인사들을 초대했는데, 그중에는 아가피아 스테파노풀로스 수녀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 증거도 없이 “이스라엘이 성전산의 이슬람 성지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가 칼슨의 방송에 출연했을 때는, 적대적 질문 세례와 모욕을 받았다. 반면 이란 대통령은 불편한 질문 하나 없이 따뜻하게 대우받았다.

    2024년 7월, 칼슨은 공개석상에서 유대인 억만장자 빌 애크먼에 대해 “그가 그 부를 어떻게 얻었는가”라고 물었다. 답은 간단하다. 그는 유능한 투자자다. 그러나 칼슨은 그를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자”로 묘사하며 “그런 방식으로 부자가 되었다면 하느님 앞에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탐욕스러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라는 고대의 반유대 음모론을, 21세기 청중에게 재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애크먼은 2024년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이었다.

    이것은 추악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의 우려는 유대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칼슨이나 그의 손님들이 뱉어낸 비열한 암시보다 훨씬 더 혹독한 시대를 견뎌왔다. 게다가 우리는 미국 인구의 고작 2%도 되지 않는다. 필자가 진정 염려하는 것은 미국 그 자체다.

    트럼프가 분명히 말했듯, 파괴적인 좌파에 맞서기 위해서는 견고한 우파 연합이 필요하다. 그 연합은 당연히 다양한 의견 차이를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막 그 부흥의 길에 오른 우리 연합은, 칼슨과 그와 같은 자들—겉으로는 보수주의자라 가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자들—에 의해 약화되고 있다.

    기도하듯 묻고 싶다. 미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MAGA”의 비전이, 언제부터 나라를 비관적으로 묘사하며 파멸론을 퍼뜨리는 자들—시청률과 영향력만 추구하면서 미국의 원수들과 교감하는 자들—에게 봉사하게 되었는가?

    슬프게도, 칼슨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2025년 1월, 부통령 JD 밴스는 칼슨의 아들 버클리를 자신의 고위 참모로 채용했다. 찰리 커크 피살 이후, 밴스가 진행한 추모 팟캐스트의 첫 초대 손님 또한 칼슨이었다. 지금 칼슨은 밴스가 섬기는 행정부를 공격하는 데 대부분의 방송 시간을 쓰고 있음에도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태를 꿰뚫고 있는 듯하다. 그는 6월 이란 정책을 두고 칼슨과 이견을 보이자, 그를 “괴짜(kooky)”라고 일축했다. 정책과 언어 양면에서 칼슨과 단호히 결별할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반면 밴스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탁월한 연합 구축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운동을 세우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MAGA”의 경우, 그것은 위대한 조국에 대한 거리낌 없는 사랑이다. 이 비전은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과 제도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이 연합은 크고 다양하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연합은 경계 설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MAGA” 운동은 미국의 위대함을 지탱하는 모든 토대를 의심하면서 “그저 질문할 뿐”이라 위장하는 자들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제2차 세계대전의 ‘누가 선인이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모스크바를 마이애미보다 낫다고 여기며, 미국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는 독재자에게는 친절하면서 텍사스의 공화당 상원의원에게는 공격적이라면, 당신은 미국 회복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서 이 나라에 도덕적 힘의 유산을 전해주신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후손인 유대인들을 단순히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자 “이스라엘에만 충성하는 자들”로 본다면,당신은 결코 보수주의자도, 미국의 애국자도, “MAGA”의 생명력을 보존하려는 어떤 운동의 일원도 아니다.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뒤를 따르려는 이들이, 너무 늦기 전에 그를 본받기를 바란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1-03 07:18]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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