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의 축일(All Saints’ Day)에 교회박사(Doctor of the Church)로 선포된 성 요한 헨리 뉴먼(St. John Henry Newman)의 이름은 더없이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아이러니도 담겨 있었다.
뉴먼은 19세기의 가장 창조적인 그리스도교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는 평생의 여정 속에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와 개혁적 고교회적(High Church) 성공회 전통을 거쳐 마침내 가톨릭으로 들어왔다. 그 여정은 때로 험난했으며, 그는 오해와 중상, 교회 관료제의 답답함, 성직자 간의 시기심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 그는 시대를 초월한 여러 걸작을 남겼다.
그의 저서 ‘Apologia Pro Vita Sua (자기 생명을 위한 변론)’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Confessiones)과 함께 위대한 그리스도교 자서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The Idea of a University’는 자신을 가톨릭이라 칭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또 ‘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동의의 문법 지원을 위한 에세이)’는 신앙의 철학과 심리학을 모두 아우르는 불후의 명저이다. 그의 ‘Parochial and Plain Sermons (교구와 평이한 설교)’는 설교학적, 문체적 보석이며, ‘Prayers, Verses, and Devotions (기도, 시, 경건한 묵상)’은 영적 독서의 보고(寶庫)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기독교 교리의 발전에 관한 논고)’이 있다. 이 놀라운 저술은 교리 발전이 어떻게 성경 계시와 교회의 전통의 진리를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않으면서, 내적으로 유기적으로 전개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뉴먼이 가톨릭 교회와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1845년 출간 이후 한 세기 동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요 교리들—교회론, 신적 계시, 종교 자유, 에큐메니즘, 교회와 국가의 관계—을 가능하게 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또한 뉴먼이 제시한 “참된 교리 발전”과 “전통과의 단절”을 구분하는 기준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반박으로 남아 있다. 뉴먼은 아마 오늘날 교회박사로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주장은 ‘패러다임 전환’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교리 발전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둘 다 모르기 때문이라고.. 물론 필자보다 훨씬 우아하게 말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는 가톨릭 정통성의 준거점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의 뉴먼은 19세기 울트라몬타니스트들에게 깊은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교황 무류성(papal infallibility)을 지나치게 확장하여, 교황을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신적으로 보증된 진리를 말하는 신탁(oracle)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뉴먼은 교황 무류성의 “사실”과 “한계”를 모두 정확히 이해했으며, 이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국 승리했지만, 울트라몬타니즘의 지도자이자 영국의 개종자 동료인 헨리 에드워드 매닝 추기경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럼에도 뉴먼은 ‘노퍽 공작에게 보낸 서한(Letter to the Duke of Norfolk)’에서, 교황과 교황직에 관한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영국 사회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변호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즉위 후 초기의 역사적 조치들 가운데 하나로 뉴먼을 추기경에 서임함으로써, 울트라몬타니스트들의 반(反)뉴먼 공세를 종식시켰다. 따라서 “레오”라는 이름을 계승한 제14대 교황이 뉴먼을 교회박사로 선포한 것은 참으로 ‘참으로 합당하고 의로운 일’이었다. (덧붙이자면, 요한 바오로 2세는 1997년 12월 만찬 자리에서 뉴먼이 언젠가 Doctor Ecclesiae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며, 이는 베네딕토 16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뉴먼이 교회박사로 선포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교회의 일치는 다시금 울트라몬타니즘의 부활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19세기의 반동적 모델이 아니라, “사상적으로는 진보주의, 교회 통치에서는 자유주의적 권위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울트라몬타니즘이다.
이 새로운 울트라몬타니즘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정 교도권적 가르침에 대한 “존중 어린 의견 차이”를 두고, “단순한 불복이 아니라, 전임 교황의 교도권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라고 몰아붙이는 논평자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이런 터무니없는 비난—사실상 중상(中傷)—은 지난 12년간 드물지 않았으며, 지난 8월 디트로이트의 성심대신학교에서 세 명의 명망 있는 교수들이 갑작스레 해임된 사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진보적 울트라몬타니즘은 그 반동적 전신과 마찬가지로, 허약한 논거를 교황 권위에 대한 맹목적 호소로 보강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새로운 울트라몬타니스트들은 옛 울트라몬타니스트들처럼 잔혹할 수 있으며, 탐구적 신학을 억압하는 그들의 태도는 지적으로 폐쇄적이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관행으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명백히 비판받았다.
성 요한 헨리 뉴먼 교회박사는 과거의 울트라몬타니즘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21세기에 다시 나타난 그 거울상을, 그러나 한층 세련된 언어로, 우아하면서도 단호하게 개탄했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