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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134 |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국장은 ‘국가장의 위엄’보다 ‘체제 충성의 과시’에 초점이 맞춰진 행사였다.
김영남은 오랜 기간 외교적 얼굴로 활동했지만, 실권과는 거리가 먼 ‘체제 상징적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장을 거행하고 김정은이 직접 영결식에 참석한 것은, 내부 결속과 충성의 모범을 재확인하기 위한 의도적 연출로 보인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과 같은 표현은 반복되지만, 실제로 김영남의 정치 생애는 김씨 일가의 권력 정당화를 위한 외교적 방패 역할에 그쳤다. 이 ‘로세대 혁명가’의 죽음은 북한이 여전히 과거 인물의 충성을 반복 상징화해야만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사의 중심에는 고인이 아닌 김정은이 있다. ‘김정은동지께서 영결식에 참가하시였다’, ‘경의를 표시하시였다’는 표현은 10여 차례 이상 반복되며,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보다 김정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의례적 장면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지도자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동시에, 체제의 최고 권위가 모든 국가 의례의 중심에 서 있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이다. 김정은이 직접 장의식을 주재하는 모습은, 내부 결속이 흔들리는 시기에 ‘지도자=국가=체제’라는 절대적 동일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보도문에 따르면 ‘수많은 수도시민들이 연도에서 조의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는 자발적 애도라기보다 체제의 명령에 따른 ‘비애의 동원’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주요 장례식은 모두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 조기, 명예위병, 조총 발사, 집단 묵도, 그리고 끝없는 찬양어. 이는 정치적 신앙 고백의 재현이자 ‘공포 속의 일체감’ 연출이다.
오늘의 북한에서 이런 의례는 단순한 장례가 아니라, ‘죽음마저 체제 충성의 도구로 삼는 국가’의 본질을 드러낸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김영남동지의 혁명정신이 공화국의 륭성번영과 더불어 영생하기를 기원하였다”로 끝난다. 그러나 ‘영생’이라는 표현은 북한 정치언어의 핵심적 허구이다. 김일성의 ‘영생탑’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지도자와 체제의 불멸성을 동일시하며, 현실의 고통과 실패를 감추는 상징적 장막 역할을 해왔다.
김영남의 죽음을 ‘영생의 승화’로 포장하는 것은, 체제의 노쇠화와 후계 불안을 감추기 위한 언어적 장치일 뿐이다. 북한은 여전히 죽음조차 선전의 연장선에서 소비한다.
김영남의 장의식은 과거 혁명세대의 충성을 재활용하여 현재의 불안을 봉합하려는 정치적 의례였다. 그의 장례가 “엄숙히 거행되었다”는 표현 이면에는, 경제난·통제 강화·엘리트 불안이라는 현실이 가려져 있다.
북한의 국장은 더 이상 한 혁명가의 마지막 길이 아니라, 권력의 위기를 감추기 위한 ‘죽음의 정치극’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