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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35 |
노동신문이 묘사하는 평양종합병원은 “세계 일류급 의료봉사기지”이자 “사랑의 집”으로 찬양된다. 기사 속 모든 문장은 김정은 개인의 ‘헌신’과 ‘애민정신’을 찬미하며, 환자의 회복과 의사의 진료마저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이 병원은 본래 의료체계의 개선보다 체제 선전의 무대로 기획된 ‘정치 프로젝트’에 가깝다. 김정은이 직접 첫 삽을 뜬다는 상징적 연출부터 개원 이후의 선전 보도까지, 평양종합병원은 의료시설이 아니라 ‘김정은의 자비’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정치적 무대다.
병원이라는 공공 공간이 환자의 치료보다 ‘지도자의 은덕’을 찬양하는 신앙적 의례의 장으로 변질된 현실은 북한 체제의 비정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사 속 환자와 의사들의 모든 감탄과 감사의 표현은 철저히 통제된 언어로, 자발적 목소리가 아닌 체제 충성의 의무를 수행하는 문장들이다.
노동신문은 병원의 내부를 “궁전같은 건축미”와 “최신 설비”로 묘사하지만, 정작 평양을 제외한 전국의 보건 환경은 붕괴 상태다. 평성, 함흥, 정평 등 지방의 환자들이 ‘평양까지 올라와야만’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료 불평등의 상징이다.
세계 일류급 의료설비가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절망이 평양으로 몰려든 결과일 뿐이다.
또한 “승강기와 전광판, 화상진단설비” 같은 ‘기계적 장식’은 의료의 본질과 무관한 치장에 불과하다. 정작 약품 공급망은 제재와 생산 부족으로 마비되어 있으며, 의사들은 장비보다 체제 충성심으로 평가받는 현실이다.
평양종합병원은 병자가 아니라 방문객과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병원’이다. 진정한 의료봉사는 병원 벽 안이 아니라 체제 전체의 구조적 개혁에서 시작된다.
기사는 곳곳에서 “감동을 금치 못했다”, “격정을 터쳤다”, “눈물이 앞섰다”는 감정적 문장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 ‘감동의 합창’은 체제가 국민에게 강요하는 감정 통제의 전형이다.
병원 이용자의 자연스러운 만족이 아니라, ‘감사해야만 하는 국민’의 연출이다. “평범한 사람이 세계적 병원의 첫 환자가 되었다”는 서사는 김정은의 ‘은총’을 강조하는 신정체제적 언어다.
이처럼 감정의 모든 경로가 지도자에게 귀속되는 사회에서, 의료 행위는 과학이 아니라 충성의식으로 전락한다. 환자는 환자가 아니라 ‘은혜의 수혜자’이며, 의사는 전문가가 아니라 ‘충성의 전달자’가 된다. 북한의 의료는 인민의 생명이 아니라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상징 자원으로 쓰인다.
노동신문은 “병을 털고 일어나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발언을 인용한다. 이는 의료가 개인의 회복을 넘어 ‘충성의 다짐’을 유도하는 정치적 의례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병원의 존재 목적이 환자의 건강이 아니라, 체제 유지에 필요한 ‘정신적 건강’, 즉 복종의 강화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실제 북한의 공공의료는 국제 제재와 자원 고갈, 비효율적 계획경제로 인해 붕괴 직전이다. 의료 장비의 상당수는 수입 불가능하거나 노후화되어 있으며, 약품의 상당 부분이 시장에서 개인 거래로 유통된다. 평양종합병원은 이러한 구조적 붕괴를 감추기 위한 ‘쇼케이스’에 불과하다. 김정은의 ‘애민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정치무대일 뿐, 인민의 고통을 치유하지 못한다.
노동신문은 기사 마지막에서 “인민의 건강과 웃음을 지켜주는 희한한 새 전당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희한한 전당’은 인민의 병원이 아니라 권력의 신전이다. 병원의 벽은 대리석으로 꾸며졌지만, 그 안의 현실은 철저히 통제된 침묵과 허기, 불평등으로 채워져 있다.
평양종합병원은 북한 체제가 선전하는 ‘문명국가’의 상징일지 몰라도, 동시에 그 체제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기만적인지를 증명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인민의 웃음을 지켜주는 것은 대리석 궁전이 아니라, 자유로운 진료와 말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지도자를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