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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38 |
조선신보가 “침구학의 과학화, 표준화 실현”을 주장하며 ‘경혈신경도’의 국제적 우수성을 자찬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전은 북한의 의료체계가 처한 현실을 감추기 위한 전형적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고립된 체제의 자족적 신화를 덧칠하고 있을 뿐, 실제 의료 환경과 국제 기준에서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조선신보는 고려의학종합병원이 “경락이론과 신경계통이론을 결합한 경혈신경도”를 1990년대에 확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시기는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과 보건 붕괴를 겪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의약품 부족으로 아편, 인삼, 침술 등 전통요법이 대체치료로 등장했던 절박한 상황을 “과학화”로 포장한 셈이다.
진정한 의미의 과학화란 객관적 임상시험과 국제적 동료평가를 거친 데이터 축적을 말한다. 그러나 북한의 침구학 연구는 폐쇄된 환경 속에서 자체 검증에 그치며, 외부 학계의 검토나 WHO의 인증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과학’이라는 단어를 정치적 신뢰 확보의 장식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의 ‘표준화’ 정책은 의료인의 자율적 연구나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의료행위를 중앙의 이념적 통제 아래 두려는 정치적 기획이다.
“경혈신경도”는 단순한 의학 도표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주체의학’ 노선을 상징한다. 그 핵심은 과학의 진보보다 ‘자력갱생적 치료체계’라는 이념적 명분 유지에 있다.
북한의 의료현장에서는 최신 MRI 장비보다 침과 뜸, 그리고 ‘원수님의 은덕’이 우선시된다. 과학적 검증이 아닌 정치적 충성의 척도로 ‘표준화’가 정의되는 셈이다.
북한은 전통요법을 ‘고려의학’이라 부르며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 병원 현장은 전력 부족, 의약품 결핍, 전문인력 유출로 의료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환자는 수혈 대신 한약을, 수술 대신 침술을 권유받는다. 이런 구조적 낙후를 가리기 위해 “침구학의 세계적 평가”라는 허구적 수사를 반복한다.
“국내외에서 우수하게 평가된다”는 표현은 검증 불가능한 전형적 선전어법이다. 어느 나라, 어떤 학회, 어떤 연구기관이 평가했는지 구체적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경혈신경도”는 과학의 성과가 아니라 체제 홍보용 기호에 불과하다.
북한의 의료 담론은 언제나 인간의 생명보다 체제의 자존을 우선시한다. 침구학 연구 역시 의료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우리식’의 상징, 즉 주체사상적 독자노선의 산물로 이용되고 있다. 인민의 건강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과학을 동원한 이념 선전이 지속되는 한, 북한의 의료는 결코 현대화될 수 없다.
결국 조선신보의 “침구학 과학화”란, 과학을 말하지만 과학을 모욕하는 역설이다. 그것은 병을 고치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체제의 허약함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침술’에 불과하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