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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39 |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연속편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을 “혁명가의 신념을 가르치는 교본”으로 찬양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영화는 ‘물욕에 빠진 자의 배신’, ‘충신의 가정에서 자라난 속물’, ‘끝까지 지켜야 할 신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인간의 삶을 교훈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순한 예술 감상이 아니라, 경제난 속 주민들에게 체제 충성을 강요하는 정치 선전의 한 형태로 읽힌다.
노동신문은 영화 속 인물 염우태가 “암소를 지키려다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몰락은 “물욕의 결과”이자 “황금만능주의의 종착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북한에서 물질적 욕망은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구조적 빈곤의 산물이다.
주민들이 암소 한 마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존 때문이다. 체제가 공급을 멈추고, 시장을 통제하며, 생계 수단을 죄악시한 결과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 ‘배신’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물욕이 죄”라는 프레임은 결국 국가의 무능을 개인의 도덕 탓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불과하다.
노동신문은 또 다른 교훈으로 “충신의 가정에서도 사상단련이 없으면 배신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경계의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습 체제의 불안심리를 반영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 속에서 ‘혈통 충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부모가 혁명가라도 자식이 혁명가가 된다는 법은 없다”고 경고하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이 교훈은 충성의 ‘피’보다 충성의 ‘훈육’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체제에 대한 끝없는 사상교육과 감시의 정당화를 의미한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변치 말아야 신념이고, 끝까지 지켜야 신념이다.” 이는 북한이 현재 얼마나 ‘신념의 위기’에 처했는지를 반증한다. 국가가 경제난, 주민 불만, 내부 부패로 흔들릴수록 ‘신념’과 ‘충성’을 되풀이하는 것은 스스로를 세뇌하기 위한 언어적 의식에 가깝다.
이른바 ‘신념 교양’은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게 하는 심리적 방어막이다. 신념을 외치는 이유는 그것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신문이 ‘혁명적 신념’을 주제로 영화를 선전하는 시점은 우연이 아니다. 농촌혁명, 지방건설, 산림복구 등 각종 정책이 부진하고 주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체제는 ‘사상 교양’이라는 최후의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하지만, 현실의 주민들은 굶주림과 냉기를 견디며 살아간다. 영화의 교훈이 “당을 믿고 끝까지 나아가라”는 구호로 요약될 때,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통제의 언어다.
노동신문이 말하는 ‘인생의 교훈’은 결국 당의 교훈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훈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 준다. 배신의 원인은 물욕이 아니라 빈곤, 신념의 붕괴는 사상 부족이 아니라 불의의 지속이다.
북한의 예술이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비출 수 있으려면, 혁명의 신념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그려야 한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