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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40 |
북한의 노동신문은 최근 「어머니당의 뜨거운 사랑을 온 나라에 전해간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젖제품운반차, 교복운반차, 곶감수송차” 등 각종 차량들이 인민과 어린이에게 ‘사랑’을 실어나르고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언어의 이면에는 물자 부족과 정치선전의 허상이 교차하고 있다.
신문은 김정은이 “모든 어린이에게 젖제품을 공급하도록 했다”고 치켜세우며, 이를 ‘당의 정책’이자 ‘후대관의 구현’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과 탈북민 증언에 따르면, 이런 유제품 공급은 극히 제한적이며 행사성 공급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양 등 일부 도시의 시범학교를 제외하면 농촌지역에서는 ‘젖제품운반차’를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즉, 기사에 묘사된 “하루도 빠짐없는 전국적 공급망”은 실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젖줄기’는 체제의 생존을 위한 선전의 혈맥일 뿐이다.
노동신문은 반복적으로 “운반차”와 “수송차”를 감정적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교복과 학용품을 실은 차량, 곶감수송차, 띄운콩운반차까지 등장한다. 이는 실제 물자 이동이 아니라, ‘지도자의 사랑이 움직이고 있다’는 상징적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한 장치다.
북한 선전의 오랜 수법인 ‘차량 서사’는 부족한 경제 현실을 감추기 위한 대체 서사이다. 트럭 한 대가 달리는 영상 한 컷이면 “전국적 공급체계”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지방공업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외진 산골마을까지 실려 간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민의 자력 생산’이 아니라 ‘당이 내려주는 은정’이다. 즉, 주민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배급의 수혜자로 위치된다.
‘운반차’는 자립경제의 상징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통제와 종속의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이 구조 속에서 ‘지방중흥’은 스스로 서는 지역발전이 아니라 ‘지도자의 사랑이 닿은 곳’만 살아나는 불균형적 체제를 의미한다.
기사 전반에 깔린 “어머니당”, “뜨거운 사랑”, “자애로운 손길”이라는 표현은 종교적 헌신을 강요하는 정치신학의 언어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복종과 감사의 감정을 동시에 자극하며, 물질적 결핍을 감정적 풍요로 대체한다.
그러나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은정의 손길’이 아니라 지속적 전력, 식량, 의약품이다. ‘어머니당’의 상징적 언어는 그 결핍을 정당화하는 교리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이 기사에서 진짜 주인공은 ‘인민’도, ‘운반차’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 그 자체다. 실제로 많은 북한 영상에서 등장하는 수송차들은 외형만 꾸민 채 내부는 비어 있거나 행사 후 회수된다고 한다. “사랑을 싣고 달린다”는 구호 뒤에는 비어 있는 적재함과 고장난 경제가 남는다.
노동신문이 그리는 ‘사랑의 수송차’는 북한식 통치의 축소판이다. 지도자의 은총이 실린 ‘차량’이야말로, 인민의 결핍을 가리는 이동식 무대이자 선전용 소품이다. 실질적 생산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감정의 연출뿐이다.
“사랑을 전한다”는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인민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랑의 연극’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에 다름 아니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