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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141 |
북한이 12일 사회과학원에서 개최한 ‘천년숙적 일본의 만고죄악 폭로·단죄 토론회’는 겉으로는 역사학부문 학술행사로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내부 결속을 위한 정치적 선동 성격이 짙은 행사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일제의 만고죄악을 까밝혔다”, “천백배 복수의 피값” 등을 반복하며 전형적인 적대 선전 구도를 재생산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실증적 근거에 기반한 과거사 연구와는 거리가 멀고, 현대 동아시아 외교환경과도 완전히 괴리된 정치적 공연에 가까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통신에 따르면 토론회 발표자들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정책, 문화재 약탈 등을 일방적으로 열거하며 “일제의 만고죄악은 세대가 열백 번 바뀌어도 아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구체적 사료, 비교 연구, 국제학계 논의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식 역사학이 갖는 구조적 한계, 다시말해 정권의 정치적 목표에 맞춘 단선적 서술만 반복된 것이다.
또한 ‘천년숙적’이라는 비역사적 표현을 강조하며 현대 일본 사회 전체를 집단적 가해자로 규정하는 방식은, 역사적 책임성과 일본 내 양심적 시민사회의 노력까지 싸잡아 부정하는 비합리적 프레임으로 지적된다.
북한이 일본 관련 담론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국내 경제난과 주민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목적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많다. 식량·전기·의약품 부족 심화, 경기 침체와 국경 장기 봉쇄 여파, 노동력 재배치와 통제 강화, 북중·북러 교류 확대에도 역부족인 생계난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은 과거사 문제를 다시 꺼내 ‘공통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내부 불만을 억누르고 응집 효과를 노린 것과 함께, 한국이 일본과의 협력에 나서는 것을 사전 차단하려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북한은 일본과의 외교·경제 접촉이 거의 단절된 상태이지만, 주변국들은 과거사 문제를 두고도 현실적 관계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어느 국가와도 조율할 필요가 없는 폐쇄적 구조 속에서 ‘복수의 피값’이라는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는 등 외교적 자해에 가까운 노선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심화시킨다. 우선 일본과의 인도적 교류·납치자 문제 해결의 단절, 북일 관계 개선 가능성 차단, 한·미·일 공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효과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체제 이미지 악화 등을 가져올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인권침해와 가해 책임은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를 시대착오적 선동 구호나 복수심 조장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피해자 기억의 신성함을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결과를 낳는다.
진정한 과거사는 객관적 자료, 학술적 검증, 외교적 대화와 협력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의 이번 토론회처럼 ‘일본=천년 숙적’이라는 도식만 반복해서는 과거의 치유도, 미래의 비전도 제시할 수 없다.
북한의 이번 ‘일본 규탄 역사토론회’는 학술의 외피를 두른 정치 선전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 대신 적대감만 재생산함으로써, 북한은 스스로 미래 세대에게 감정의 족쇄를 물려주고 있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역사 문제조차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북한의 구조적 문제를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남긴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