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 동안 청년층이 LGBTQ 스펙트럼 어딘가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비율이 기록적으로 증가해 왔다. 2023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고등학생의 약 4분의 1이 LGBTQ로 자처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흐름은 마침내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에릭 카우프만 영국 버킹엄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이질적 사회과학 센터(Centre for Heterodox Social Science)’를 통해 「미국 청년층에서의 트랜스 및 퀴어 정체성의 감소」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2023년 이후 Z세대에서 트랜스 및 퀴어 정체성이 급격히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카우프만은 ‘UnHerd’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앤도버 필립스 아카데미는 매년 학생의 4분의 3 이상을 조사한다. 2023년에는 9.2%가 자신을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올해 그 수치는 3%로 폭락했다. 브라운대학교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2022년과 2023년에는 5%가 자신을 비이분법적 성별(non-binary)이라고 했지만, 2025년에 이 비율은 2.6%로 떨어졌다.”
카우프만은 ‘개인권리·표현의 자유 재단(FIRE)’이 실시하는 미국 대학생 설문에서도, 트랜스젠더로 자아규정하는 비율이 2022년 6.8%에서 2025년 3.6%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자들은 특히 ‘논바이너리’ 정체성이 급락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카우프만은 “트랜스는 쇠퇴 중”이라는 자신의 논지를 방증하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며 장문의 반론을 제기했다. 적어도 젊고 교육받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러하다.
실제로 논바이너리 정체성의 감소와 함께, 처음부터 LGBTQ 증가의 급등을 견인했던 기타 ‘비전통적 성적 자기 규정’—점점 더 모호해진 ‘퀴어’, ‘양성애’, 혹은 단순한 ‘질문 중’ 등—에서도 10%p 가까운 감소가 동반되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이성애는 지독히 따분하다’고 여겼던 문화적 조류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후 며칠 뒤, 샌디에이고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진 트웽도 ‘YouGov’가 매년 수집하는 ‘협동선거연구(CES)’ 데이터를 분석한 후속 연구를 발표했다. 트웽은 이렇게 결론냈다.“미국 청년층에서 트랜스젠더로 자아규정하는 비율이 실제로 ‘자유낙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18~22세 연령층에서는 2022년 대비 2024년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논바이너리 정체성은 2023~2024년 사이에 절반 이상 하락했다.”
트웽은 ‘Fox News Digital’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든 연령층을 포함한 데이터를 보면, 1980년 이전(Gen X와 베이비붐 세대) 출생자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현재 21~25세)까지 트랜스젠더 자아규정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05~2006년생(현재 18~20세)을 기점으로 다시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이제 질문은 ‘트랜스 정체성이 쇠퇴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이다.”
데이터 뒤에 숨은 전체 맥락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 콜린 라이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트랜스 정체성이 “사회적 전염”이며, 따라서 “호황-붕괴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년 전 스웨덴 보건복지위원회가 13~17세 여성의 트랜스젠더 자아규정이 2008~2018년 사이 1,500% 폭증했다고 발표한 뒤, 리사 리트만의 ‘사회적 전염’ 연구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학문 경력이 거의 파괴될 뻔했다.
물론 이 현상에는 확실한 문화적 요소가 있다. 지난 10년간 LGBTQ로 자아규정하는 것은 ‘멋진(cool)’ 일이었다. 이성애가 아닌 모든 정체성은 축하받고, 칭찬받고, 특히 학교·대학에서는 특별대우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청년층의 LGBTQ 정체성 급증은 동성 간 실제 행위 증가와는 병행되지 않았다. 만약 증가가 ‘다양한 성적 삶의 방식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 상승’에 따른 것이라면 그런 변화가 자연스레 나타났어야 했다.
앤드루 설리번과 에릭 카우프만은 청년들이 ‘LGBTQ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성애 행태를 유지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두가 LGBTQ가 될 수 있도록 새 정체성이 계속 만들어졌다.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지사의 딸도 먼저 ‘퀴어’로, 다음에는 ‘데미섹슈얼’—정서적 친밀감을 느끼고 난 뒤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묘사하는 새로운 ‘성적 지향’—로 ‘커밍아웃’했다. 이런 새 지향들은 실제로는 자기를 LGBTQ 축제에 끼워 넣고 싶은 평범한 이성애 청년들을 위한 진입로에 불과했다. 현실판 “안녕, 게이 친구들 Hello, fellow gays” 밈(meme)이었다.
‘퀴어의 순간’은 정점을 찍은 듯하다. J. K. 롤링은 젠더 이데올로기를 향한 가차 없는 조롱으로 사실상 ‘1인 해체전’을 수행해 왔다. 키이라 나이틀리 같은 유명인들도 이제는 트랜스 운동가들의 보이콧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는다.
LGBTQ 운동은 한때 문화적 패권을 장악했지만, 이제 ‘각성된 검열관’의 역할을 자처하며 예측 가능한 진부함에 빠지고 있다. 프라이드 달을 맞아 무지개색으로 장식된 대형 은행들만큼 ‘비(非)반문화적’인 것이 또 있는가?
LGBTQ 운동은 여전히 거대한 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한다. 그들은 할리우드, 민주당, 교육계 상당 부분, 그리고 학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성전환 “치료”가 초래한 피해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줄줄이 발표되고, 법원이 이를 규탄하고, 미·영 양측에서 제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그 영향력은 큰 상처를 입었다. 또한 클로이 콜과 같은 디트랜지셔너들의 비극적 증언은 서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트웽의 분석에 무게를 둔다. 트랜스 정체성은 앞으로도 계속 붕괴할 것이다. 남은 질문은 두 가지뿐이다.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 그리고 이 사회적 전염이 남긴 상흔은 얼마나 클 것인가?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