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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빈자들과 점심 함께 한 교황 레오 14세 |
바티칸에서 울린 교황 레오 14세의 목소리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향한 강력한 윤리적 메시지로 확산되고 있다.
교황은 16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난한 이들의 희년’ 미사를 집전하며 “정의 없이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조언을 넘어, 불평등과 배제의 구조를 방치한 채 안정과 평화를 기대하는 세계 각국 정부에 대한 사실상 ‘일침’으로 해석된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오늘날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향해 뚜렷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이주민, 소외계층,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보라. 그들의 울부짖음은 정의가 무너졌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와 진보라는 신화가 모든 사람을 품지 못하고 수많은 이들을 사회의 가장자리로 내몰고 있다”며, 성장과 번영의 숫자 뒤에 숨겨진 배제의 현실을 끄집어냈다.
국가 간 국경을 넘는 이주 위기,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양극화가 격화되는 가운데 교황의 메시지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 중남미, 아시아 권력층을 향해 던지는 광범위한 경고로 보인다.
교황은 오늘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고독, 단절, 영적 황폐함은 현대 사회의 또 다른 빈곤”이라고 언급하며, 사회적 연결망이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 해결책으로 교황은 ‘관심의 문화(culture of care)’를 제시했다. “타인을 보는 눈, 가장 약한 이웃에게 다가가는 용기,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적·경제적 시스템 변화뿐 아니라 각 개인에게 부여된 윤리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메시지로 이해된다.
미사 후 교황은 바오로 6세 홀에서 노숙인, 장애인, 난민, 취약계층 등 1,300명과 직접 좌석을 함께했다. 이번 행사에는 약 50명의 트랜스젠더 여성도 초대돼, 교황청이 성소수자 문제에서 보다 실존적·복음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바티칸 관계자들은 이를 “교회가 선입견보다 인간의 존엄을 우선시한다는 상징적 행동”이라 설명했다. 교황의 이 같은 행보는 가난·차별·배제를 하나의 연결된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현대 천주교 사회교리의 방향성과도 맞물린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다. “평화는 말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이들을 존중하는 정의의 실천 속에서만 자란다.”
바티칸에서 울린 이번 메시지가 각국 정치 지도층의 귀에 실제로 닿을지는 미지수지만, 세계가 격동 속으로 빠지는 지금, 교황의 외침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