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교회의(USCCB)의 최근 ‘특별 사목 메시지’에서, 미국의 주교들은 붕괴된 이민 제도가 초래한 고통을 강조하며, 매일 불확실성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취약한 가정들에게 깊이 공감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렇듯, 본당에서 이민자들을 직접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교들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 것이다.
사목적 동반은 분명 필요하지만, 교회의 도덕 교훈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정치적 상상력이 쉽게 분리하려 드는 진리들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주교들이 “인간 존엄성과 국가 안보는 상충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국익을 위한 공동선을 위해 국가들은 국경을 규제할 책임이 있다”고 재확인할 때, 바로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이는 인도주의적 선언문 말미에 덧붙는 단서가 아니다. 가톨릭 교도의 일부이다. 이 진리들을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우리 국가가 필요로 하는 가톨릭 도덕 전통의 지혜를 스스로 박탈하는 일이다.
오늘 많은 미국 가톨릭 신자들과 공공 리더들이 갈망하나 좀처럼 접하지 못하는 대화, 즉 자비가 정의를 무력화하는 무기로 변질되지 않고, 국가 주권이 배타주의나 외국인 혐오로 축소되지 않는 대화가 바로 이런 종류의 논의다. 바로 이 보다 충만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CatholicVote’의 문서 「이민 집행과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작성된 것이다.
미국 주교들은 “공포의 분위기”,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조차 두려워하는 부모들의 고통, 그리고 종종 가혹하고 때로는 비인간적인 구금시설의 현실에 대해 근심하는 데 있어 옳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민 집행과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차원을 제기한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일관적이고 집행 가능한 이민 제도를 유지하는 데 연방 정부가 실패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주변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주장하듯, 바로 합법적 질서의 붕괴가 착취가 만연하고, 카르텔이 번성하며, 수백만 이민자들이 법적 구제나 명확한 전망이 없는 그림자 세계로 밀려나는 조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국가는, 그 법 아래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할 이민자들의 존엄을 법치의 포기 속에서 온전히 존중할 수 없다.
가톨릭 교리는 공동선을 위해 정부가 이주를 규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정당한 이유로 이주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이민자들에게는 해당 국가의 법을 준수할 의무를, 정부에게는 그 법을 정의와 인간 존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집행할 의무를 병행하여 부여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합법적 구조의 부재가 결국 이주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다고 거듭 경고한 바 있다.
국가의 첫 번째 의무는, 자국민이든 이주민이든 참된 연대가 가능해지는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국경은 자비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주교들이 우려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사회적 분열뿐 아니라 도덕적 혼란도 야기한다.
수백만 명이 합법적 절차 밖에서 입국할 때, 새로 들어온 사람과 정치 공동체 사이의 기본적 법적 관계가 결코 정식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자선은 정의를 대체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고, 그 결과는 둘 다 아니다.
정당하게 수행되는 이민 집행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도적이고 지속 가능한 이민 정책의 전제 조건이다. 집행이 없다면, 가장 후한 합법적 이민 경로조차 회피로 인해 붕괴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주교들의 사목적 우려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상 사목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은 일치해야만 일관된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법 자체는 도덕적 선이다. 그리고 법의 정의로운 집행은 복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요구가 공적 영역에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국경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는 국가는 혼란을 초대하는 국가이다. 그러나 국경을 가혹하게 혹은 자의적으로 집행하는 국가는 스스로의 도덕적 기초를 배반하는 국가이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우리에게 이 양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 둘 모두를 거부하라고 요구한다.
주교들의 메시지가 양심에 대한 호소라면, CatholicVote의 문서는 보다 절제되고 신실한 신중함에 대한 호소이다. 그리고 신중함은 오늘 우리의 국가적 논쟁에서 가장 결여된 주요 덕목이다.
가톨릭 공동체는 다음 네 가지 진리와 직면해야 한다.
1. 국가가 이주를 규제할 도덕적 권리는 가톨릭 교리에 의해 단순히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다. 이 진리를 무시하거나 부차적 참고 사항으로만 취급하면, 가톨릭 신자들은 정책 논의에 의미 있게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게 된다.
2. 대규모 불법 이주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 사회 비용을 발생시키며, 그 부담은 가난한 이들에게 불균형적으로 전가된다. 이를 외면하면 공적 신뢰가 침식되고 주교들의 연민 호소도 약화된다.
3. 이주민의 인간 존엄은 이주가 합법적·투명·질서 있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질 때 가장 잘 보호된다. 이를 위해서는 적대적 제스처가 아니라 정의의 연장선으로서 집행이 요구된다.
4. 가톨릭 신자들이 안전한 국경을 요구한다고 해서 신앙이나 자비심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주장하는 것은 감상주의와 참된 사랑을 혼동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메시지 말미에서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상기시킨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희망이 현실 직면을 회피하는 것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민자들과 함께 서고자 한다면, 우리는 진리와도 함께 서야 한다. 인간 존엄성에 관한 진리만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과 공공 질서의 요건에 관한 진리와도 함께 서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