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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46 |
북한이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 제작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령리한 너구리〉 85·86부를 공개했다고 조선신보가 보도했다.
표면적으로는 “동심에 맞춘 만화적 수법”을 강조하지만, 이번 작품 역시 북한 아동 콘텐츠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과학적 원리의 단순화와 왜곡, 집단 감시와 경쟁을 미화하는 구도,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억누르는 서사적 장치가 전편과 다르지 않게 반복된다.
애니메이션 제85부 〈빨간꽃〉은 주인공 너구리가 하얀 꽃을 붉게 바꾸는 과정을 “생물학적 특성의 활용”이라는 명목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작품 속 묘사 방식은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정답 따라하기’식 구조이다.
곰과 고양이는 물감을 주사하거나 붓질하는 등 나름의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주인공 너구리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설정이 반복된다. 이는 과학적 탐구의 다양성과 실험적 실패를 인정하는 현대적 교육 방식과 거리가 멀다.
북한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이듯, ‘지도자격 인물만이 답을 알고 있으며 나머지는 그저 따라야 한다’는 구조적 은유가 다시 등장한 셈이다.
또한 작품은 너구리의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곰과 야웅이가 몰래 훔쳐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염탐 행동이 비난되기는커녕 웃음거리와 경쟁 심리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북한 사회에서 상호 감시 체계는 주민 통제의 핵심적 수단인데, 어린이용 콘텐츠에서조차 이를 ‘놀이적 요소’로 미화하는 방식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 ‘몰래 감시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심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동심에 맞는 만화적 수법을 적극 활용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서사 구조는 창의적 탐구보다는 교훈적 메시지 강요에 가깝다. 북한 어린이 콘텐츠의 전형적 문제—정답주의, 모범 캐릭터 숭배, 단일 해답 강조—가 반복되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확장하기보다는 획일적 사고 체계를 강화하는 기능에 치중한다.
과학 원리를 다룬다고 하나, 단순한 색 변화 실험을 ‘정답 있는 미션’처럼 그리는 방식은 현대 아동 교육 기준과 상당히 동떨어진 접근이다.
세계 각국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다양성·창의성·문제 해결력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 콘텐츠는 여전히 이념적 틀이 우선하는 전근대적 접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6부 〈열대섬에서 만난 펭귄〉은 제목만 보면 흥미로운 모험담처럼 보이지만, 북한 애니메이션은 전통적으로 해외·이국적 배경을 활용하더라도 체제 선전과 모범적 행동 강조가 서사 전개에서 핵심을 차지해왔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캐릭터 간의 충성과 협동, 모범 행동이 중심이 되는 기존 패턴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령리한 너구리〉는 겉으로는 밝고 순한 아동용 만화로 보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는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도자형 인물에게 배워라”, “감시는 자연스럽다”와 같은 체제 친화적 사고 모델이다. 이는 아이들의 자율성과 사고의 폭을 넓히기보다는 오히려 좁히는 방식이다.
창작물이 아이들의 세계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만큼 과학·모험을 가장한 사고 통제형 콘텐츠는, 교육적 가치를 포장하더라도 결국은 아동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령리한 너구리〉의 새로운 편 공개는 단순한 아동 프로그램 출시가 아니다. 이는 북한이 아동용 콘텐츠에서도 체제 순응적 가치와 감시 문화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이다.
외형은 귀엽지만, 내용은 여전히 이념적 통제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