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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47 |
북한 노동신문이 또다시 “풍년가을”을 외쳤다. 강서구역 청산농장이 올해도 “절세위인들의 은덕” 덕분에 대풍작을 거두었다는 익숙한 선전 문구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기사 곳곳에는 ‘포전정치’, ‘사상교양’, ‘당의 배려’가 줄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찬가 속에서 정작 농민들의 삶이 실제로 나아졌는지, 농업 생산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
북한은 매년 가을이면 빠짐없이 “전야마다 황금이삭 물결”이라는 문구를 반복한다. 그러나 풍작을 강조하는 기사와는 대조적으로, 식량난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UN 산하 기구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도 최소 80만~100만 톤의 식량 부족을 겪고 있으며, 지방에서는 배급 중단과 아동 영양실조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신문은 “정보당 50t의 거름”, “사상교양 강화”, “포전정치 사업 공세적 전개”와 같은 문구를 통해 성과의 원인을 ‘정신력’과 ‘사상사업’에서 찾는다. 현대 농업에서 생산성을 좌우하는 요소는 종자·비료·관개·기계화·유통 구조인데, 기사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민들에게 책임과 충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언어만 반복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청산농장이 “다수확 품종 도입”, “경작기계 가동률 제고”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의 농업 경제 실태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서 ‘이동식 벼 종합탈곡기 가동률을 높였다’는 표현은 엄밀한 성과라기보다 선전용 문구에 가깝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는 “흐뭇한 풍년분배”, “풍요한 가을을 안아올 열의”가 언급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수확량과 농민 개인분배량은 공개되지 않는다. 결국 “풍년가을”이라는 표현은 체제 선전용 슬로건이지, 농민의 삶을 개선하는 경제 지표가 아니다.
청산농장의 ‘풍년’이라는 주장은 결국 다음 사실을 가린다. 식량난은 여전히 북한 주민의 일상적 고통과 농업 생산성은 근본적 전환 없이 정치 구호와 충성 경쟁에 묶여 있는 현실, 그리고 농민의 실질적 권한과 소득 개선은 체제 논리에 가로막혀 있다.
농민의 노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노력의 열매가 농민의 식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청산벌의 풍년가을”이라는 구호는 결국 체제 선전의 무용한 반복일 뿐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풍년을 원한다면, 사상 사업이 아니라 농업 구조를 바꾸는 용기, 그리고 농민의 권리와 삶을 개선하는 정책적 투명성이 필요하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