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85] 두 개의 헌정(憲政)에 관한 이야기
  • 안드레아스 롬바르드 Andreas Lombard is a German freelance writer and former editor in chief of CATO, the leading conservative magazine in Germany. CATO 전 편집장

  •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저명한 지성들이 오늘날의 이념적 투쟁을 얼마나 정확히 내다보았는지는 늘 필자를 경탄하게 한다. 특히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스위스 철학자 드니 드 루주몽이다. 그는 1944년 처음 출판된 『악마의 몫(La Part du Diable)』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새로운 비극이 놓여 있다. 우리는 미래의 히틀러에 대비해 모든 것을 예견했으나, 그 부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부재야말로 확실하다. 이것이 바로 내일의 악마가 틈탈 기회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우리 시대의 신학적 순진함은 새로운 야만성에게 가장 중대한 이점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수십 년의 흐름은 루주몽의 예견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을 보라. 그는 오늘의 ‘가해자들’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히틀러는 여전히 현재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23일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슈타인마이어는 독일이 여전히 나치 시대의 “그 동일한 악”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히틀러의 망령은 그가 가장 최근인 11월 9일에 행한 연설에서도 중심 주제였는데, 11월 9일은 현대 독일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긴장에 찬 날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날은 “우리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 연설에서 슈타인마이어는, 극우·반민주주의 정당으로 규정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히틀러의 후계자로 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루주몽이 예견한 그대로다. 경제·사회·인구학적 위기가—히틀러가 아니라—유권자들을 AfD로 향하게 한다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정치 엘리트들은, 정당에 대해 지속적인 탈법적·반민주적 캠페인을 수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

    슈타인마이어는 이제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AfD 금지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자”고 독려한다. 유권자 불만 앞에서의 무력감과 권위주의적 오만함이 기묘하게 뒤섞인 이 발언은 주류 언론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독일 정치 엘리트는 분명한 딜레마와 마주하고 있다. 내년에는 8개의 주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여론조사는 AfD 지지율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한 공격을 감행하여,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예전에 말한 것처럼 “새로운 국민을 선출”하든지, 아니면 정권에서 밀려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한편, 슈타인마이어가 AfD를 ‘反헌법적’이라고 비난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에서 일리가 있다. 독일연방공화국은 거의 시작부터 두 개의 헌정을 가져왔다. 1949년의 성문헌법, 그리고 ‘살아 있는 헌정’, 즉 반파시즘 헌정이 그것이다. 이 두 번째 비성문헌법은, 폴 고트프리트가 2021년 저서 『반파시즘 Antifascism』에서 설명했듯, 특정한 이념에 의해 움직인다.

    근대성의 의미 위기, 스탈린 시대부터 이미 심화된 사회주의에 대한 염증, 그리고 동구권 붕괴는 독일 좌파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도록 만들었다. 베를린의 철학자 페터 푸르트가 1990년에 표현했듯, 좌파는 “무조건적 도덕성의 정치적 현현(顯現)”이 되었고, 이 무조건적 도덕성은 “그 동일한 악”에 대한 영원한 저항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는 가톨릭 전통의 구원사(救援史)적 상상력과도 묘하게 충돌하는, 세속적 · 이데올로기적 ‘절대 도덕성’이다.

    이 무조건적 정치 도덕성의 부상은 전후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영향력 있는 문학 집단 ‘47그룹’이 등장했고, 1950년대 초에는 ‘노동자 없는 마르크시즘’이라 불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귀환이 있었다. 격렬했던 1960년대와 테러가 난무했던 1970년대는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시기는 대중적 태도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된 시기였다. 그러나 헬무트 콜 정부가 끝난 1998년까지는 성문헌법이 여전히 국가 정책의 우위에 있었다.

    그 이후, 독일의 ‘살아 있는 헌정’—특히 통일 이후 구동독식 공산주의적 반파시즘의 영향—이 성문헌법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2016년 2월 20일, 베를린 문화계의 76명 인사가 메르켈 총리의 국경 개방을 찬양하는 글에 서명해 디 벨트(Die Welt)에 광고로 실었다. 그 문장은 마치 메르켈이 백만 명의 무슬림 이주민을 받아들임으로써 히틀러를 ‘재차 패배시킨’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느껴진 안도감은 실로 엄청났다. 그들은 마침내 “그 동일한 악”을 저지를 수 있는 독일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독일 엘리트들은 메르켈의 각종 법 위반에 무심할 수 있었다.

    슈타인마이어가 부르는 “방어적 민주주의”는 사실상 은밀한 쿠데타를 가리고 있다. AfD는 이 ‘살아 있는 헌정’의 적이다. 정부는—이를 말로 인정하지도 않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성문헌법을 수정해, 이 비성문헌법을 섬기도록 만들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그룬트게제츠를 공공연히 위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말이다.

    독일 엘리트에게 ‘살아 있는 헌정’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선한다. 따라서 AfD와의 충돌의 핵심은 헌법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사적 문제이다. 독일 정치가가 따르는 ‘낙관적 비극’의 개념에 따른 구원사 말이다. 이는 브셰볼로드 비슈네프스키의 1932년 동명 희곡처럼, 비극적 사건 안에서도 긍정적 의미를 발견한다는 세속적 구원사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히틀러를 ‘다시’ 패배시키는 전 지구적 카타르시스는, 독일이 치르게 될 희생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생각이 필자를 전율하게 하지만, 미래에 무엇이 닥쳐올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1-22 07:45]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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