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아(Shoah)’는 히브리어로 ‘파국적 폐허’와 ‘헤아릴 수 없는 재앙’을 뜻한다. 이 단어는 시편 35편에서 원수들에 대한 저주의 표현으로 등장한다. “멸망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닥치게 하소서!”(시편 35,8) 또한 스바니야서와 다른 곳들에서는 하느님의 심판이 가져오는 황폐함을 뜻하며, 잠언에서는 악인의 길이 불러오는 필연적 파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장 라스파이유의 논쟁적 소설 『성인들의 진영』(보방 북스의 재번역본)은 바로 이 쇼아의 이야기다. 네이선 핑코스키가 이 작품을 평가하며 말했듯이(“서구의 영적 죽음”, 2023년 5월), 멸망과 상실은 라스파이유가 일생 품어온 주제였다. 그의 다른 저작들에서 그는 문화적 파괴와 황폐의 도덕적·영적 경험을 상상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다른 양상을 그린다. 그는 기 파괴와 스스로 선택한 빈궁(貧窮)이라는, 더 복잡하고 더 두려운 운명을 묘사한다.
‘쇼아’는 성경적 용어로서, ‘홀로코스트’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 역사적 사건은 서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는 그 죽음의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서구를 뒤흔든 수많은 파국들을 응축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세기 초 수십 년 동안 서부전선의 참호전에서 전례 없는 살육이 벌어졌고, 서유럽 사상에서 태어난 이념에 고무된 러시아 혁명은 피에 굶주린 폭력의 시대를 열었다. 이어진 경제대공황과 사회적 붕괴는 정치적 격변을 촉발했다.
1930년대에는 민감하고 성찰적인 이들이 혁명을 열망했다.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했고, 다른 이들은 파시즘에 기댔다. 선택은 달랐지만, 그 결정의 밑바탕에는 공통된 판단이 있었다. 곧, 서구 문명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혁명적 허무주의 공기 속에서, 이전보다 더욱 파괴적이고 잔혹한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인들은 1945년의 패배를 슈툰데 놀(Stunde Null), 곧 “제로 시점”이라 불렀다. 이는 영적·물질적 모든 것이 잿더미로 돌아간 때였다. 프랑스는 완전한 붕괴를 겪지는 않았으나, 해방 이후 전시(戰時) 협력과 타협에 대한 고통스럽고 때로는 폭력적인 정산을 겪었다.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악을 물리친 선한 전쟁’으로 기억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존 롤스는 전쟁 직후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고, 그 경험은 그의 신앙 상실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수용소를 해방한 이들은 유대 민족의 쇼아뿐 아니라 서구 문명 자체의 쇼아를 목격했다.
서구의 1945년 이후 재건을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식은 1950년대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프랑스 실존주의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르트르, 까뮈 등은 형이상학적 공백, 곧 어떤 유산도 존중될 수 없고 어떤 권위도 신뢰될 수 없으며 어떤 진리도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할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가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든 것이 실추된 시대에 앞을 향한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사람들은 통치를 다시 시작했고, 붕괴된 경제를 재건했으며, 기존 제도와 전통적 권위에 가능한 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온전히 있지 않았다. 전쟁 직후 까뮈는 나치의 언어를 역설적으로 변주하여 서구 문명의 진실을 표현했다. “재앙은 오늘 우리의 공동 조국이다.”
까뮈는 특유의 인간미로, 이 말에서 희망의 작은 빛을 보았다. 우리는 최소한, 공동의 황폐 속에서, 유산에 대한 불신 속에서, 한때 믿었던 진리와 권위가 흙으로 빚은 우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그 공동의 분열 속에서 연대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필자는 『강한 신들의 귀환』에서, 까뮈가 표현한 피할 수 없는 허무주의가 어떻게 서구 재건을 위한 긍정적 프로그램으로 전화(轉化)되었는지 간략히 그려본 바 있다. 이는 칼 포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이들이 정식화한 열린 사회 합의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어 다른 이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여기서 그 세부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쇼아의 논리—즉 파멸의 논리—가 역설적이게도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혹적인 면모도 지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악의 매혹처럼, 공허함 또한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진다.
사르트르는 형이상학적 진리가 부재하기 때문에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맡겨졌다고 강조했다. 포퍼 역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비슷한 말을 했고,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적 엄밀함으로 이 자유를 보장할 反형이상학적 교리를 제출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곧 인간 경험은 가변적이며, 현실은 우리가 만들고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열린 행위의 장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도 영향을 미쳤기에, 사르트르의 교조적·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그의 실존주의와 완전히 조화되었다.
‘열린 사회’ 합의는 명시적 허무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신, 서구 유산의 파괴와 축소를 다원성, 포용, 평화라는 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이작 벌린은 자유주의적 관용의 덕목을 다원주의라는 형이상학적 교리로 끌어올렸다. 그는 허무주의를 피하려 했지만, 이 교리는 산산이 조각난 세계의 현실과 잘 들어맞았다. 한때 단일해 보였던 옛 진리들은 부서졌다. 그 결과로 벌린 등은 국경 없는 더 포용적인 사회가 탄생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 합의에는 혁명을 억제할 항체가 거의 없었다. 지도자들은 실용적 한계를 설정할 수는 있다. 어떤 변화들은 너무 비용이 크거나 실현하기 어렵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재앙의 그림자 속에서는 혁명은 쉽게 유혹적이 된다. 적어도 혁명은 우리가 긍정하고 헌신할 수 있는 미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허무주의는 또한 ‘평화’를 약속한다. ‘아무것도 싸울 가치가 없다면, 누구도 싸우지 않을 것이다.’ 라스파이유는 허무주의의 이 측면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의 소설 결말을 보라. 마지막에는 대격돌이 없다. 이민 선단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상륙한다. 폭력이 있기는 하지만 주변부에서 일어날 뿐이며, 이는 오늘날 드문드문 이어지는 테러,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특수부대나 드론 공격과 비슷하다.
그리고 ‘번영’을 빠뜨릴 수 없다. 문명의 붕괴가 주는 한 가지 이점은 상업과 혁신의 장애물 제거다. 유산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원재료가 된다. 최근 들어 필자는 알렉상드르 코제브에 대한 평가가 깊어졌다. 나는 이제 그가 안정적·관리 가능한 허무주의 상태를 이론화하려 했음을 이해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오늘날 점점 더 드러나는 불안정하고 해체되는 허무주의보다 차라리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핑코스키는 정확히 지적한다. 『성인들의 진영』은 서구와 非서구의 대결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이는 서구 내부의 내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전쟁에서, 라스파이유는 결정적 순간을 상상한다. 백만 명의 이민자가 프랑스 상륙을 앞두고 있다. 이 묵시록적 장면에서, 전후 서구의 심장부에 자리한 허무주의의 최종 승리가 드러난다. 붕괴는 즉각적이며 완전하다.
이 지점에서 라스파이유는 참된 예언자는 아니었다. 그 내전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문화·외교에서 ‘열린 사회’ 합의의 실패가 드러나고 있다. ‘포퓰리즘’으로 불리는 반작용은 힘을 얻었다. 우리는 묵시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끝에 펼쳐질 긴 투쟁에 진입하고 있다.
전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내 이미지는 “강한 신들의 귀환”이다. 현상을 어떻게 부르든,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깃발이 다시 흔들리고, 사람과 장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일어나는 중이며, 옛 진리들이 되살아나고, 형이상학적 상상력이 재점화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하느님의 권위가 다시 주장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언의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필자는 ‘First Things’의 독자들이 서구의 허무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전투원이 되길 바란다. 그 투쟁 속에서 우리는 ‘강한 신들’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후원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반대자들이 반드시 서구의 의도적인 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런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가 공유하는 20세기의 슬픈 역사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그 수치의 연대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라스파이유가 매우 명확하게 보았듯이, 부정—특히 자기 부정—은 어떤 지속 가능한 조국도 만들 수 없다. 서구의 미래를 둘러싼 이 상승하는 내전 속에서, 우리는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 이끌려야 한다. 왜냐하면 긍정은 까뮈의 연약하고 실패하는 ‘공동 재앙의 형제애’보다 훨씬 넉넉한 연대의 터전을 만들기 때문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