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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미국 재무장관·하버드 총장까지 지낸 세계적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가 결국 ‘엡스타인 스캔들’의 파장에 휘말려 모든 공공 직책에서 물러났다.
단순한 지인 관계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의 딸을 둘러싼 수상한 조언 요청, 그리고 엡스타인과의 빈번한 접촉이 드러나면서, “세계 권력 엘리트의 은밀한 네트워크가 드러난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1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대표 진보 싱크탱크 ‘미국 진보센터(CAP)’는 서머스가 연구원 직책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 역시 그가 더 이상 자문위원회 멤버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는 하루 전인 17일, 서머스가 발표한 성명에서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모든 공공 활동에서 퇴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결정이다. 정치·학계를 두루 장악해 온 거물급 인물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이번 사퇴의 직접적 계기는 미 의회가 최근 공개한 엡스타인 관련 이메일 2만여 건이었다. 그중 서머스의 이메일 다수는 엡스타인과의 이상할 정도로 친밀한 교류를 보여준다.
특히 눈길을 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머스는 엡스타인에게 중국 공산당 간부의 딸인 여성 제자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라고 여러 차례 조언을 구하고, 이메일에서 그 여성을 “Peril(위험한 인물)”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러한 연락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7월 5일까지 반복되었다고 《하버드 크림슨》이 밝히면서 해당 여성 제자를 김각우(Jin Geowu)라고 지목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 전 재정부장 김립군의 딸, 2000~2009년 하버드에서 경제학 학사·박사 취득, 이후 런던정치경제대학(LSE) 종신 교수로 재직중이다.
즉, 중국의 ‘레드 프린세스’이자 글로벌 학계 엘리트로 성장한 인물이 하버드 총장 출신의 기혼 남성과 엡스타인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로 등장한 셈이다. 현재까지 김각우는 언론의 문의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미 의회가 공개한 문서들은 서머스가 단순한 지인 수준이 아니라 엡스타인의 주요 연락망 핵심 인물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서머스는 미국 정치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 오바마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하버드 총장(2001~2006), 하버드 교수(1983~현재) 등으로 미국 경제정책이 정점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엡스타인과 잦은 미팅·통신을 이어왔고, 심지어 개인의 연애 문제까지 상담한 사실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성추문이 아니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사건이 중국 공산당 엘리트와 미국 학계·관료·재계 거물들이 엡스타인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던 정황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머스는 미국 민주당 핵심이자, 국제 금융·학계의 거물이고, 김각우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딸로 LSE 종신 교수로 있으며, 엡스타인은 글로벌 ‘엘리트 사교망’의 중심축에 있던 사람이었다.
즉, 미·중 고위층이 엡스타인의 네트워크를 통해 교차 접속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 하버드·LSE 등 세계적 학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파장을 예고한다.
엡스타인은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로 수감되었고, 2019년 재수감 후 의문사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 이후에도 전 세계 권력자와의 연결망은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지난주 추가 공개된 이메일 2만여 건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서머스는 교수직은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가 정작 대답하지 못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미국 재무장관·하버드 총장까지 한 인물이 범죄자 엡스타인에게 ‘중국 공산당 고위층 딸’ 관련 조언을 구했는가? 그 연결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이 연결망은 지금도 살아있는가?
글로벌 엘리트 네트워크에 대한 의혹은 이제 더 이상 음모론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그 실체가 공식 문서와 이메일로 드러난 첫 사례일 뿐이다.
미 의회의 문서 공개가 계속 이어지면서, ‘엡스타인 네트워크’의 후폭풍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