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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1989년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과 시민에 대한 무력 진압을 거부해 덩샤오핑의 분노를 샀던 장군 쉬친셴(徐勤先)의 군사재판 영상이 35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은 38군을 베이징으로 투입해 유혈 진압을 실행했지만, 38군 군장이었던 쉬친셴 소장은 이동 명령에 서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했다. 그의 결정은 즉각 체포와 비밀 군사재판으로 이어졌다.
6·4 운동 경험자이자 전 중국정법대학 교수인 우런화(吳仁華)는 25일 해외 플랫폼 X에 이 재판 영상 전체를 업로드했다. 영상은 인터넷 아카이브에도 저장되었으며, 총 6시간 3분 44초**에 달한다.
영상은 1990년 3월 17일 베이징 군사법정에서 진행된 재판을 기록한 것이며, 지금까지 존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초유의 사료다.
우런화는 앞서 11월 16일에도 재판 당시 사진을 공개하며, 쉬친셴의 체포와 해임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쉬친셴이 군을 이끌고 베이징에 진입해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덩샤오핑과 양상쿤은 즉시 그를 체포하고 군사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했다.” — 우런화
쉬친셴은 형기 종료 후 허베이 스자좡에서 사실상 ‘감시 하 거주’ 처지로 지내다 2021년 1월 8일 향년 86세로 사망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당시 군검찰이 6·4 시위를 “반혁명 폭동”이라 규정하며 쉬친셴이 “공연히 당 중앙 결정을 거부했다”고 비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쉬친셴은 재판 내내 굴하지 않았고, 특히 ‘절차적 정당성’, ‘군의 역사적 책임’을 언급하며 진압 거부 이유를 차분히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테랑 언론인 가오위(高瑜)는 쉬친셴이 친청(秦城) 203 감옥에서 야오원위안·양샤오밍 등 고위 정치범들과 같은 구역에 수감돼 “각자 독방에 갇힌 채 밤에는 함께 TV를 보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영상이 공개되자 중국어권 SNS에서는 쉬친셴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진정한 영웅, 진정한 군인이다.” “그는 절차적·역사적 관점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천안문은 역사의 상처이자 중국이 독재로 기운 전환점이었다.” “이 영상은 국가기밀급 자료…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경악스럽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심판하는 장면을 보라.”
특히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코멘트로 큰 공감을 얻었다. “쉬 군장은 인민해방군이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공개 영상이 천안문 학살의 군 내부 논쟁, 계엄령 발표 과정의 불법성, 군부 내 반대 세력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 자료라고 평가한다.
한 중국 인권 연구자는 “이번 영상은 당국이 ‘증발시키려 했던 진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며 향후 중국 민주화 운동 연구에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천안문 학살의 그날, ‘명령을 거부한 장군’의 육성이 드디어 빛을 본다.
쉬친셴이 남긴 질문인 “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역사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 물음은 35년이 지난 지금 중국 사회에 다시 던져지고 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