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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모스크 방문한 레오 14세 교황 |
레오 14세 교황이 29일(현지시간) 이스탄불의 대표적 이슬람 사원 ‘블루 모스크’를 방문하며 종교 간 대화의 신호탄을 다시 올렸다.
신발을 벗고 흰 양말 차림으로 모스크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신중하게 기도 없이 ‘경청과 명상’만으로 방문을 마무리한 행보는 새로운 방식의 종교 외교로 평가되고 있다.
레오 14세는 이날 약 15분간 모스크를 둘러보고,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 아스긴 툰카의 안내를 받으며 내부 분위기를 조용히 살폈다. 그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할지 여부가 관심사였으나, 이맘이 “이곳은 내 집도, 당신의 집도 아닌 알라의 집이니 원하면 기도하라”고 권했음에도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교황청은 한때 “교황이 기도했다”는 성명을 배포했다가 즉시 정정하며 “기도가 아니라 묵상과 경청의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슬람 신앙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을 표하되, 성경적 전례에 대한 교황의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려는 조율로 보인다.
AFP는 레오 14세가 흰 양말을 착용한 것이 의무가 아니라며,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화이트삭스 밈’은 신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네딕토 16세(2006년), 프란치스코(2014년)도 블루 모스크 방문 시 짧은 묵상 시간을 가졌으며, 두 전임자는 맞은편의 성소피아도 함께 찾았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이번 성소피아 방문을 일정에서 제외했다.
교황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소피아의 박물관→모스크 재전환(2020년) 이후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계속되어 온 상황을 고려한 외교적 판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날 오후, 레오 14세는 이스탄불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대규모 미사를 집전했다. 튀르키예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교지만, 비가 오는 날씨에도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져 현지는 열기로 가득 찼다.
교황은 설교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잇는 세 개의 다리를 언급하며 “기독교와 다른 신앙도 서로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르톨로메오스 1세와 함께 세계 곳곳의 유혈 분쟁을 애도하며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촉구했다.
레오 14세와 바르톨로메오스 1세는 공동선언에서 “가톨릭과 정교회가 단일한 부활절 날짜를 정하기 위한 용기 있는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수세기 동안 동서 교회 간 갈등의 상징적 쟁점으로 남아 있던 문제로, 교황이 직접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다만 실제 단일 날짜가 언제로 정해질지는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
레오 14세는 30일 레바논으로 이동해 중동 내 종교 간 긴장 완화 메시지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튀르키예 방문은 교황 재임 이후 첫 해외 순방으로, ‘대화·경청·평화’라는 교황의 신학적·외교적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