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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60 |
북한 노동신문이 또다시 자연재해 피해를 ‘영도자의 은혜’로 포장하는 장문의 찬양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은 “재앙을 당한 사람들이 행복의 주인공으로 되는 나라”라지만, 실상은 홍수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체계적으로 보호하지 못한 국가가 스스로의 무능을 덮기 위해 무리하게 만들어낸 선전 서사에 가깝다.
노동신문은 라선·은파·검덕 등 최근 10여 년간 큰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들을 사례로 들며, 매번 김정은이 험한 길을 달려가 직접 주민들을 위로하고 새 집을 선물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국가적 예방 시스템 부재가 반복적 재난을 낳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재난 발생 때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챙긴다’는 프레임은 감성적 선전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재난 관리의 구조적 실패를 덮는 가장 비효율적 방식이다. 다른 나라들은 재난정보통신망, 배수설비, 위험지역 관리, 보험·보상체계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피해를 방지한다. 반면 북한은 제도를 만들지 못한 책임을 개인 숭배로 대체한다.
노동신문은 ‘천지개벽’, ‘선경마을’, ‘무릉도원’ 같은 표현으로 복구사업을 신비적으로 미화한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재건은 대부분 군대·청년돌격대·지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초단기 공사를 밀어붙인 결과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러 탈북민 증언에 따르면, 홍수 직후 급히 지어진 주택은 1~2년 사이 다시 균열·누수·침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희생을 강요받는 주민들이다.
노동신문은 ‘군당일꾼들은 천막에서 지냈다’고 미담처럼 포장하지만, 그 천막에서 생활한 주민과 돌격대원들은 대개 영양 부족과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결과적으로 ‘기적’은 주민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선전용 무대세팅일 뿐이다.
노동신문은 미국의 허리케인 피해 사례를 끌어와 “자본주의는 시체가 떠다니고 약탈이 난무하며 정치가들은 골프를 친다”고 왜곡 서술한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재난 대응 실패를 감추기 위해 흔히 쓰는 *전적 물타기다.
미국·일본·유럽은 국가 차원의 재난보험, 지역 재해대응센터, 통합 지휘 체계, 구호 기금 및 법적 절차 등 개인 의존이 아닌 제도 기반의 복구 시스템을 운영한다.
반대로 북한은 정보 은폐, 구조 인력·장비 부족, 피해 규모 발표 불투명, 주민의 자력갱생 강요, 국제 지원도 정권 체면 때문에 거부 등의 문제로 인해 피해가 재발한다는 점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말하는 “모두 구원된다”는 주장과 달리, 홍수 이후 실종자·사망자 수를 공개하지 않는 구조적 투명성 부족이 항상 존재한다.
노동신문 기사의 핵심은 재해 복구가 아니라 김정은 개인의 가족적·신적 이미지 구축이다. 기사 곳곳에는 “하늘같은 사랑” “살아있는 하느님” “친근한 어버이” “인민을 품에 안은 성스러운 지도자” 등의 문구가 등장한다.
자연재해 상황을 이용해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정권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전형적인 감정 정치 프로파간다다. 재난은 주민에게는 고통이지만, 정권에게는 ‘영웅적 지도자 연출’의 기회가 된다.
기사는 “자연재해는 하늘이 입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책임 회피일 뿐이다. 재난은 ‘하늘’이 아니라 부실한 치수·방재·건설행정이 만든 인재(人災)다. 책임은 자연이 아니라 관리 실패를 반복해온 국가 시스템에 있다.
노동신문은 피해 주민들을 “특별귀빈”으로 대접했다는 미담을 길게 소개한다. 그러나 정작 묻지 않는다. 왜 매번 같은 지역이 피해를 입는가? 왜 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집을 지킬 권리가 없고, 외부 지시에 따라 강제 이주해야 하는가? 왜 구조적 문제는 고치지 않은 채, 지도자 방문만 반복되는가? “지도자를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식의 교조적 이야기는 현실의 위험을 해결하지 못한다.
노동신문이 아무리 ‘천지개벽’과 ‘영광’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더라도,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사회적 취약성은 숨길 수 없다.
진정한 국가의 책무는 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연출이 아니라,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재난을 선전용으로 소비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새로운 보금자리’가 아니라 다음 재난의 예고장일 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