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에게 너무도 밀착해 있다. /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얻고 쓰느라 우리의 역량을 허비하고 만다. / 자연 속에서 우리에게 속한 것은 거의 없다. / 우리는 마음을 내주어 버렸다. 불결한 은총을 대가로!”
워즈워스가 소비문화가 자연 세계에 대한 경이의 관상을 대체하는 현실을 탄식하며 읊은 이 구절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술 관료주의적 패러다임”이라 부른 것의 서정적 묘사이기도 하다. 그는 ‘찬미받으소서’에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하며, 그 패러다임이 인간과 자연 세계, 인간 상호 관계를 오직 효율, 이익, 권력으로만 재단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비인간적 이해는 무분별한 소비주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고도 지속적인 무시로 특징지어지는 ‘폐기 문화(throwaway culture)’를 조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톨릭 신앙을 학문의 여러 분야와 통합하고, 학생들을 창조 세계의 선(善) 안에 잠기게 하며, 디지털 세계가 만연하게 가져다주는 화면과 비현실성으로부터 절제하도록 요구하는 총체적 교육 모델을 제시한다.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연속성을 약속했을 때, 필자는 그 역시 전임자의 교육 비전을 강조하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첫 번째 교황권 교서인 「희망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며」에서 가톨릭 교육의 쇄신을 중심 주제로 삼은 것은 바로 이 같은 연속성을 보여준다.
레오 교황은 교육이 교회의 부수적 사명이 아니라, “복음화의 직물 자체를 이루는 활동으로서, 복음이 문화가 되는 구체적 방식”이며 세상에 희망의 지도를 제공하는 길이라고 적는다.
“우리는 복잡하고, 파편화되고, 디지털화된 교육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전인교육의 우주론’을 다시 응시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야 한다…. 복음은 그 기원부터 ‘교육적 성군(星群, constellations)’을 낳아 왔다. 곧 시대를 해석하고, 신앙과 이성, 사유와 삶, 지식과 정의 사이의 일치를 보존할 수 있는 겸허하면서도 힘 있는 체험들이다…. 그것은 밤의 바다에서 항해를 이끄는 등대와 같다.”
가톨릭 교육은 학생들이 세속적 공리주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별을 바라보도록 촉구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세어 보아라.’ … 너희는 스스로에게 묻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왜 가는가?’”
교서 발표 이틀 뒤, 레오 교황은 학생들에게 다시금 이렇게 강조하였다.
“스마트폰과 그 순간적 이미지들에 마음을 붙들어 두지 말고, 하늘을, 저 높은 곳을 바라보십시오.”
이 마지막 문장은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 성인의 표어 ‘Verso l’alto(더 높은 곳으로)’를 명백히 상기시키는 것으로, 교황은 이를 통해 최근 시성된 이 청년 성인의 삶 전체가 보여주는 증거를 부각한다. 또한 그는 새롭게 교회 학자로 선언된 성 존 헨리 뉴먼을 인용한다. 두 인물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레오 교황은 젊은이들을 기술 관료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요구하는 ‘높은 곳’으로 이끈다.
교서는 말한다. “교육은 효율성의 축으로만 그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교육은 인간의 존엄, 정의, 공동선을 위한 봉사의 능력에 따라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온전한 인간학적 비전이 가톨릭 교육학의 초석으로 남아야 한다. 성 존 헨리 뉴먼의 사상을 따를 때, 교육을 기능성과 실용성으로만 측정하려는 상업주의적 접근을 거슬러 나아가야 한다.”
가톨릭 교육은 단지 학생들이 별을 바라보도록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는 초월적 빛을 스스로 구현해야 한다. 교육 공동체가 바로 그 빛의 담지자가 될 때, 공동체는 학생들에게—그리고 더 넓게는 세상에—진정한 인간적 삶과 사회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북극성’이 된다.
아무도 홀로 교육하지 않는다. 역사 전반에 걸쳐 가톨릭 교육은 성군과도 같은 협력망을 형성하여, 본당·교육기관·정치·시민사회·수많은 산업을 자기의 중력권 안으로 이끌며, 세계를 향한 예언적 증거를 제시해 왔다. 그 증거는 활동주의로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학생들을 자유로운 남녀로, 봉사하는 시민으로, 사도적 신앙인으로 형성하는 공동체라는 사실 그 자체로 드러난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교육 성군의 모습은 시대의 요구와 성격에 따라 조정되어 왔고, 사막 수도자들의 관상과 내적 쇄신의 소명과 현대 문화에 대한 선교적 관여를 균형 있게 이어 왔다. 오늘 우리의 시대적 상황에서 레오 교황은 가톨릭 교육에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1. 내적 삶(영적 생활)에 대한 교육
교황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침묵, 경청, 기도가 없으면 별의 빛도 꺼져 버립니다.”
그는 특히 자연의 침묵과 창조의 아름다움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반영이 영적 영감을 완성하고 강화한다고 강조한다.
2. 기술과 인공지능(AI)에 대한 올바른 관계 형성
“인격을 알고리즘보다 앞세우고, 기술적·정서적·사회적·영적·생태적 지능을 조화시키라.”
철학적·신학적 틀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지 않고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 기술은 학습 과정을 풍요롭게 해야지, 우리의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빈곤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알고리즘도 교육을 참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시(詩), 예술, 상상력, 발견의 기쁨—을 대체할 수 없다. 결정적인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교황은 특히 성 카를로 아쿠티스를 언급하며, 기술 중독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기술 사용을 절제함으로써 디지털 세계를 인간화한 모범을 제시한다.
3. 평화를 이루는 교육
이 교육은 진정한 인간적 만남과 대화를 제공해야 하며,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대학은 시대의 표준에 따라 폭력적 시위와 저속함을 용인해서도 안 되고, 부유층을 위한 특권적 공간이 되어도 안 된다. 오히려 상상력을 일깨우고, 봉사의 정신을 품으며, 진리에 봉헌된 애정어린 담론을 낳는 접근 가능한 학문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상은 참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밀착해’ 있으며, 우리는 기술 관료주의적 집착—‘얻고 쓰기’의 강박, 양극화된 갈등, 극단적 입장, 도파민 중독—을 통해 세상과 서로를 파괴하고 있다. 이 중대한 전환점에서, 레오 교황의 교서는 우리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는 새로운 가톨릭 교육을 촉구한다.
프라사티 성인을 따라, 자연의 관상을 통해 학생들을 위대함과 봉사로 부르고,
아쿠티스 성인을 따라, 인간적이고 인간화된 방식으로 기술을 절제하며 사용하도록 부르고,
뉴먼 성인을 따라, 통합적 가톨릭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새로운 성군(星群)이 형성되고 있고, 쇄신은 자라고 있다. 저 높은 곳으로! Verso l’alto!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