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62 |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전국청년학생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백두산밀영고향집 방문” 기사는 겉으로는 청년들의 ‘혁명정신 고취’와 ‘혁명전통 계승’을 강조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우상화 의례와 정치 선전에 불과하다.
청년과 학생들의 미래, 교육, 삶의 질과는 거의 무관한, 철저히 체제 유지용 행사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보도에 따르면 답사행군대원들은 백두산밀영고향집에 들어서자마자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에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진정하고 삼가 인사”를 올렸다. 이는 청년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에 대한 숭배를 강요받는 의례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가들의 활동을 사실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절세위인’ ‘성지’ 등의 종교적 언어로 포장한다. 사적 검증이 어려운 ‘백두산 밀영 고향집’ 설정 자체가 선전용 신화의 일부인데, 그 위에 꽃과 충성을 덧칠하며 역사를 신앙의 대상으로 바꾸는 작업이 반복된다.
역사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기회는 사라지고, 청년들의 정신세계는 ‘성지 참배’와 ‘충성 맹세’라는 단일 코드로만 재단된다.
기사에는 “백두의 기상과 정기를 한몸에 지니시고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것은 북한 체제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김정일 ‘백두혈통’ 신화를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실제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 ‘백두산 밀영 탄생설’은 신빙성이 크게 의심되고 있음에도, 청년학생들에게는 검증 불가능한 신화를 ‘역사적 진실’처럼 주입한다. 답사행군은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는 학습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결론—“위대한 령도자의 고귀한 혁명생애”—을 되풀이해 암기하는 정치교육 과정에 가깝다.
청년들이 가져야 할 질문, 비판, 탐구의 정신은 설 자리가 없다. 첫째, 교육은 객관적 탐구가 아니라 충성심 교육으로 전락한다. 둘째, 사자봉 밀영, 대원실, 우등불자리 – ‘혁명전통’이라는 이름의 단체 세뇌 프로그램 답사행군대원들은 사자봉밀영에서 대원실, 우등불자리 등을 둘러보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견결한 혁명정신과 전투적인 생활기풍을 체득했다”고 선전된다. 여기서도 핵심은 체제에 필요한 감정과 태도를 주입하는 것이다.
이 답사행군은 역사 현장을 통한 교양이 아니라, “지금의 고난도 참고 견디라”는 메시지를 과거 서사를 빌려 정당화하는 정치 프로그램이다. 답사 과정 중에 “혁명가요대렬합창경연”이 진행되었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겉으로는 명랑한 문화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문화·예술마저 정치선전에 종속된 전형적인 집단행사다.
청년문화가 자발성과 다양성을 잃고, 철저히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씁쓸한 대목이다. 노동신문 기사는 전국 청년학생들이 참여한 백두산 답사행군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만, 정작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는 내용은 한 줄도 없다.
이번 답사행군은 청년을 위한 행사처럼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청년을 체제에 묶어두기 위한 정치적 통제 장치에 가깝다. 북한 당국이 말하는 ‘혁명전통’은 특정 지도자 일가에 대한 충성과 체제 유지에 맞춰 각색된 서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래 혁명이라는 말에는 다른 의미도 담겨 있다.
만약 청년들이 이런 의미의 ‘혁명’을 배운다면, 그들은 오히려 자유로운 정보, 표현의 권리, 정치적 참여, 경제적 기회*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청년들에게 ‘혁명’의 이름만 남겨놓고, 그 내용을 철저히 비워낸 채 우상화와 충성 의례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노동신문이 자랑하는 백두산 답사행군은 겉으로는 “혁명전통 계승”이지만, 실제로는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는 ‘체제충성 행군’일 뿐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모자이크 벽화 앞의 꽃바구니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자유로운 교육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