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 기내 인터뷰에서, 레오 교황은 브라더 로렌스의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실천(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 자신의 영적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책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하였다.
로렌스는 17세기 파리의 한 카르멜회 수도원에서 활동한 평신도 수도 형제로, 그의 언행록과 서한들은 그와 가까이 지낸 요제프 드 보포르 신부에 의해 수집·출판되었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성(姓)조차 밝히지 않는 분이 쓴 아주 단순한 책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지만, 인간이 자기 삶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주님께서 그를 인도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기도와 영성의 한 형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면, 그것이 바로 제가 수년간—큰 시련 가운데서도, 페루에서의 생활, 테러리즘이 극심하던 시기, 그리고 결코 예상치 못했던 자리로의 부르심 속에서도—지녀온 영성입니다. 저는 하느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제가 모든 이와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레오 교황의 이 발언은 교황의 영적 비전과 내적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브라더 로렌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성찰들을 촉발하였다. 그러나 “오래전의 독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드러내는가? 필자가 보기에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교황이 말한 것처럼,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태도는 어려운 시기에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영적 자세이지만,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이 양 떼를 이끄는 특정한 “길”을 규정해 주는 표지는 아니다.
사실 요한 14장 6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길”—성자께서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그리고 하늘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 보여주신 길,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 앞에 발설된 말씀의 길, 그 뒤를 따르는 제자의 길,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길—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브라더 로렌스가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 주제이다.
로렌스의 관심사는, 전해지는 기록에서 보듯,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신심적 길을 모색하던 기독교 문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는 17세기 프랑스의 일종의 “신앙 문화전쟁”—예수회와 얀센주의자들, 오라토리오회 성육신주의자들과 베네딕토회 관상가들, 본당 사제들과 수도자들 사이의 갈등—에 깊이 얽혀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을 이해하려면 앙리 브레몽의 방대한 다권본 종교사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브레몽은 로렌스를 그 시대의 “범신비주의적(panmystical)” 경향 속의 작은 인물로 규정하면서, 복잡한 신학·철학·교회 논쟁과는 거리를 둔 단순하고 꾸밈없는 하느님 탐구의 한 사례로 평가한다. “하느님은 선하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매 순간 그분을 사랑하도록 힘쓰라,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그분의 섭리에 자신을 맡겨라”—이것이 로렌스의 기본적 영적 태도였다.
실제로 이는 하루하루의 요구 속에서 필요·사랑·신뢰를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지속적 “대화”를 의미했고, 짧은 기도로도, 혹은 일종의 지속적 감수성을 통해서도 실천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일상의 과업이나 인간관계도 궁극적으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태도도 수반한다. 친구가 죽으면 새 친구가 생긴다. 너무 집착하지 말라. 전례는 좋지만, 일상적 하느님과의 친교보다 특별히 더 낫지는 않다.
이것이 어떻게 교황의 삶과 연결되는가? 흥미롭게도, 드 보포르가 엮은 로렌스의 언행록 초기 판본—편집자의 장황한 성인전적 서술과 신학 논의 포함—은 18세기 초 이후 프랑스 가톨릭 안에서 널리 읽히지 않았다. 로렌스의 책은 프랑수아 페넬롱 대주교의 추천을 받았으나, 이 때문에 그의 저술은 ‘Quietism (하느님 앞에서의 전적 수동성과 소극성을 강조한 신비주의 운동)’과 연관되었고, 이는 1687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페넬롱은 이 운동과 가까웠고, 그의 신비적 저술로 인해 큰 논란에 휩싸였다.
그 대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실천》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피에르 푸아레에 의해 재발견되어 그의 영성주의적 저술 목록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판본들이 영어권과 미국 개신교 독자들에게 널리 퍼졌고, 이후 이 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제도적 교회에 대한 반감과 개인 내면의 “심성적 신앙(heart religion)” 전통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18세기 초 영어 번역자는 로렌스의 영성의 핵심을 “일상의 직무에 종사하면서도 동시에 하느님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로렌스 영성에 대한 보편적 이해로 이어졌다. 즉, 수도원 부엌에서 감자를 깎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하느님과 함께 있는 법이다. 오늘날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일상 속의 신성”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이 있는데, 로렌스는 이 장르의 원형에 가깝다.
카르멘 아세베도 부처가 말하듯, 그는 “여성의 일”로 여겨지던 노동을 수행하고 그 안에서 신적 가치를 발견했다. “프레드 로저스가 만약 신비가였다면, 그것이 곧 브라더 로렌스 영성의 따뜻한 영적 중심을 느끼는 방식일 것이다”라고 신학자 제임스 K. A. 스미스는 쓴다.
그러나 브라더 로렌스에게는 결핍된 것이 많다. 드 보포르와 최초의 영어 번역자는 로렌스의 가르침을 보완하기 위해 성경 인용, 그리스도론적 요소, 교회 교리 등 명시적 기독론적·교회적 측면을 덧붙이려 애쓰지만, 실제 그의 언행록과 서간에는 이런 요소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드 보포르는 로렌스가 복음서를 즐겨 읽고 예수님의 단순한 모습에서 위안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로렌스 자신은 이를 ‘하느님을 아는 단순한 방법’의 일부로 언급하지 않는다. 수도원 환경 속에서 성경에 깊이 잠겨 살았음에도, 그의 기록만 보면 그 사실을 거의 알 길이 없다. 그의 대화록과 편지에서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는 죄를 위한 희생 언급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도구적 맥락에서 몇 차례 스칠 뿐이다.
고통에 대해 자주 말하지만, 이는 예수님이나 이스라엘의 전통과 연결되지 않고, 그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순명과 세속적 근심으로부터의 탈착과 연관된다. ‘너무 근심하지 말라.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돌보신다. 그분을 기뻐하라.’
이 메시지는 분명 좋은 메시지다. 필자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이다. 필자는 레오 교황이 “모든 이와 나누고자 한다”는 친교적 격려의 말로서 이를 언급한 것이지, 신학적으로 특별한 방향성을 천명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방향성 또한 절박하게 필요하다. 그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아직 기다림이 필요해 보인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