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05]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를 짊어지다.
  • 크리스텐 지카렐리 Kristen Ziccarelli is a young Catholic professional living in Washington, D.C. 가톨릭 전문인

  • 최근 몇 달 동안 스페인은 유럽의 쇠퇴하는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둘러싼 전투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 쟁점 한가운데에는 카이도스의 계곡(Valle de los Caídos, ‘전몰자의 골짜기’)의 운명이 있다.

    그곳에는 산을 통째로 파내어 조성된 거대한 기념 대성당 위로, 세계 최대 규모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다. 원래 이 장소는 스페인 내전 이후 화해를 위한 공간으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조성한 것이지만, 현재 좌파 정부는 이 계곡의 가톨릭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있다.

    올여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른바 “재의미화(resignification)”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국제적 제안들을 검토하는 심사위원회를 소집했다. 그중에는 대성당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심지어 이 거대한 십자가 자체에 변형을 가하자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가 “십자가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던 초기 약속과는 달리 말이다. 그리고 11월 11일 발표된 최종 선정안은 계곡의 종교적 정체성과 건축적 일관성, 역사적 목적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는 내용이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 사업은 계곡의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파열”—수평적 균열—을 만들어 그 장소를 “대화와 복수성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대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제거하고, 국가가 규정한 이념적 기준에 따라 이 계곡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해석센터(interpretation center)”를 갖춘 대형 로비로 교체할 계획이다.

    미국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 그리스도교 기념물 중 하나가 유럽의 동맹국 정부에 의해 파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때 가톨릭적 인본주의의 보루였던 국가가, 내전이라는 참혹한 상처 이후 스페인의 화해를 위해 지어진 이 성역을, 기도와 추모의 장소에서 국가 이념을 주입하는 박물관으로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코 시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는 의도 또한 노골적이다.

    스페인 좌파가 프랑코의 유산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벌이고 있는 전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9년에는 프랑코의 유해가 이 계곡에서 파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올해 초에는 이 계곡을 맡아 온 베네딕도회 수도자, 산티아고 칸테라 수사를 정부가 사실상 사임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도원 주변 지역(마드리드에서 약 1시간 거리)은 한때 상점과 식당들이 즐비했고,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순례자들을 십자가 아래와 인근 십자가의 길 순례길로 인도하곤 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모든 것들이 폐쇄되었다.

    지금은 서구 전역의 지도자들이 일어나 맞서 싸워야 할 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 곧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표징이 아무런 저항 없이 무너진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말해 주겠는가?

    종교 자유를 옹호하고,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수호하는 일은 스페인만의 과업이 아니라 서구 전체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무이다. 특히 가톨릭 지도자들은 보편 교회 안에서 고통받는 지체들을 위해 일어설 의무가 있다.

    유럽 교회가 직면한 박해는 나이지리아처럼 물리적 폭력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양심·표현·예배의 자유가 침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럼에도—몇몇 희귀한 예외를 제외하고—대다수 지도자는 타협과 회유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잘못일 뿐 아니라, 오랜 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침입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온 유럽 그리스도교의 내적 본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박해는 곧 미국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양국 문명의 유대를 형성한 기반이며, 우리의 자유사회가 번영할 수 있게 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인으로서 스페인 가톨릭 인본주의의 특정한 전통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고, 카이도스의 계곡은 그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이다.

    브레다 항복의 관용에서부터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은 승리하되 자비와 절제, 인간 존엄을 결코 잃지 않는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구현해 왔다. 물론 스페인 역시 완전하지 않았지만(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적 희생을 감수하고, 오늘날 ‘미국인’이 된 이들에게 신앙을 전한 이들이었다.

    지난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외적 위협이 아니라, 유럽이 그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미국과 공유해 온 가치들—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가치들이란 우리가 그리스도교 유럽에서 물려받았고, 지난 250년 동안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분명히 들어 올려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이 가장 자유롭게 옹호될 수 있는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다. 스페인 정부가 자국 가톨릭 교회를 박해할 수 있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서구 문화를 누리면서도 종교에는 거의 관심이 없으며, 많은 신자들조차 자신들의 신앙이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는 것을 당연시하고, 국민적 정체성에서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공격받는 데도 무관심하다.

    앞으로 신앙을 이어받아 지켜야 할 젊은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메시지가 점점 도려내지는 세상에서 성장하고 있다. 나의 세대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우리의 자유 사회를 세웠는지, 또한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이라는 심대한 악을 극복하는 열쇠였는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점점 십자가의 메시지, 곧 화해의 탁월한 표징이며 서구 세계의 선(善)의 근원인 그 표징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전몰자의 계곡’은 스페인의 상징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문명의 거대한 의미를 증언한다.

    1084년, 쾰른의 성 브루노는 수도회(카르투시오회)를 창설하며 ‘stat crux dum volvitur orbis(세상이 흔들릴지라도, 십자가는 서 있다)’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이는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한 표어이다. 구원의 승리는 언제나 세속적 사건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십자가란 결코 없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적인 짐이 아니다. 언제나 누군가가 들어 올리고 짊어져야 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현대의 시몬(키레네의 시몬)들이 그 십자가를 다시 짊어져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12 08:11]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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