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06] 이 특정한 장소의 성모님
  • 레이먼드 J. 드 수자 Fr. Raymond J. de Souza is a Senior Fellow at Cardus. 신부, 수석 연구원

  • 가톨릭 전례력에는 이른바 ‘성모 주간’이 있다. 닷새 사이에 세 개의 성모 축일이 지켜진다. 곧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 로레토의 성모 기념일(12월 10일),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12월 12일)이다. 마리아의 잉태로부터 아홉 달을 더해 보면, 9월에도 또 하나의 성모 주간이 있다. 성모 탄신 축일(9월 8일), 성모 성명 기념일(9월 12일), 고통의 성모 기념일(9월 15일)이다.

    가톨릭 신심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둘러싼 축일들, 성지들, 수호(후원), 그리고 특히 호칭들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연도(連禱), 곧 어떤 성인이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부르는 호칭들의 집합은 때로는 바로크적이라 할 만큼 화려한 표현을 띠기도 한다. 이를테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그의 연도에서 “마귀들의 채찍이요 우상들의 파괴자”로 호칭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연도는 성모에 대한 로레토 연도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널리 바쳐지고 있다. 이 연도는 복되신 어머니를 “다윗의 망대”, “상아탑”으로 부른다. 수십 년 동안 이를 바쳐 온 신자들 가운데 다수는 이 호칭들이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호칭은 가족 간의 별명이나 애칭과도 같아서, 그 사용은 반드시 원래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데 달려 있지 않다.

    그렇기에 지난달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성모 호칭들에 관해 「교의적 주해」를 발표하며, “공동구속자(Co-redemptrix)”와 “모든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of All Graces)”라는 표현을 마리아에게 적합한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Mater Populi Fidelis, 신앙의 백성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구속 사업에서 그리스도에 종속된 마리아의 역할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고려할 때, 마리아의 협력을 규정하기 위해 ‘공동구속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중재자”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신중함”을 가지고 사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토머스 과리노 몬시뇰은 본지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성모 호칭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개관하며, 이번 교의적 주해에서 그 논쟁의 메아리를 보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번 주, 국제 마리아 협회의 신학위원회는 이 문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며, 그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 협회에는 수준 높고 정통 신앙에 충실한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든 인류의 영적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역할, 곧 공동구속자, 모든 은총의 중재자, 옹호자로서의 모성적 역할을 포함하는 교황의 엄숙한 교의 선포”를 지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 호칭들 자체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단순화일 수는 있지만, 교회가 이미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선언한 이상(431년 에페소 공의회), 그 밖의 거의 모든 호칭은 신학적으로 옹호될 수 있으며, 어쩌면 불필요하기까지 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나는 “공동구속자”와 “중재자”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곧 성모 신심은 일반적·포괄적인 차원보다는 특정하고 구체적인 차원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께 붙여지는 호칭들은 우주적 차원에서 성취된 것을 말한다. 메시아, 구세주, 구속자..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러나 성모 신심은 다르다. 성모 신심은 마리아의 현존을 특정한 장소, 특정한 조건, 특정한 삶의 상태와 연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에서 일하시지만, 마리아는 내 곁에서 일하신다. 이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감정 또한 중요하다.

    로레토 연도는 마리아를 “병자의 건강”, “고통받는 이의 위로”로 부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이주민의 위로”를 추가했다. 성모님은 하늘과 땅의 모후이시지만(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다섯째 단), 연도는 더 구체적인 호칭들을 덧붙인다. 천사들의 모후, 예언자들의 모후, 순교자들의 모후, 고해자들의 모후, 동정녀들의 모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여기에 “가정의 모후”를 추가했다.

    이번 주의 축일들은 마리아를 특정한 장소들과 연관시킨다. 로레토, 과달루페. 가톨릭 어린이가 루르드의 성모와 파티마의 성모가 서로 다른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다.

    성모님의 수호는 얼마나까지 구체적일 수 있을까? 토론토 공항 근처에는 ‘항공인의 성모(Our Lady of the Airways)’ 본당이 있다. 로마의 성 필리포 네리 성당은 거의 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키에사 누오바’라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인 발리첼라(Santa Maria in Vallicella)’, 곧 ‘작은 골짜기의 성모 마리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했고 그의 안식처가 될 로마의 대표적 성모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는 8월 5일, ‘눈의 성모’ 축일을 기념한다. (한여름 로마에 내린 기적적인 눈이 성당의 건립 장소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더 포괄적인 성모 호칭들에 대해서도 신학적 정당화는 가능하다. 결국 하느님의 어머니보다 더 포괄적인 호칭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국제 마리아 협회가 공동구속에 관한 또 하나의 성모 교의를 추가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대중적 신심에 깊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와 가정에는 원죄 없으신 잉태와 성모 승천 — 두 가지 성모 교의 — 를 묘사한 성화들이 있지만, 그 수는 과달루페, 루르드, 파티마, 체스토호바의 성모 상들에 비하면 천 대 일로 적다. 뉴욕 성 패트릭 대성당은 올해 아일랜드의 녹(Knock)의 성모를 포함한 거대한 벽화를 새로 추가하기도 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었을 때, 그는 발코니에서의 첫 발언에서 그날이 폼페이의 성모 축일임을 언급했다. 그 후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백 차례도 넘게 찾았던 ‘로마 백성의 구원(Salus Populi Romani)’ 성모 성화를 공경하기 위해 산타 마리아 마조레를 방문했다. 이는 지역적 애국심이나 국수주의가 아니다. 이는 구원사 안에서의 모성적 차원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지만, 그 아들에게는 요셉과 마리아의 집이라는 구체적인 가정이 필요했다. 우리의 집은 보편적이지 않고 지역적이다. 모성적 마음은 집을 만든다. 그래서 가자 지구의 가톨릭 본당은 성가정에게 봉헌되어 있다. 이집트로 피신했을 때조차도, 마리아는 요셉과 예수에게 집을 만들어 주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국제 마리아 협회의 자문을 받지 않았지만, 그가 올해 발표한 ‘마리아에 관한 노래’는 협회 위원회의 보고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 노래의 제목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가 아니라, ‘먼로의 성모(Our Lady of Monroe)’였다. 이 노래는 “주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는 거리들”에서 25년간 근무하고, 은퇴한 뉴어크 형사를 다룬다.

    그의 신앙은 약하지만, 그는 뉴저지 턴파이크를 따라 먼로 타운십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며 룸미러에 묵주를 걸어 둔다. 그는 먼로의 성모님께 “내게 평화를 주소서, 내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평화를” 청한다. 그 형사는 거리에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어머니께서 그 고속도로 위에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예수님을 찾기 어려운 그 장소들에서, 그분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장소들에서, 이 특정한 장소의 성모님은 현존하신다. 로레토에서, 과달루페에서, 그리고 먼로에서.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13 08:3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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