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을 하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마차도 |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노르웨이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수면 아래에서는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극비 구조 작전이 전개됐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작전의 중심에는 미국의 민간 탈출·구조 전문 조직 ‘그레이 불(Grey Bull) 구조대’가 있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BS뉴스는 11일(현지시간), 마차도의 탈출을 총괄 지휘한 인물이 미 특수부대 출신 전투 베테랑 브라이언 스턴이며, 그가 이끄는 그레이 불 구조대가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탈출 작전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주 탬파에 본부를 둔 그레이 불은 전직 특수작전 요원과 정보요원들로 구성된 민간 조직으로, 고위험 지역에서의 인명 구조와 탈출 작전을 전문으로 한다. 스턴은 지난 5일 밤, 과거 미 정보기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로부터 “베네수엘라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을 빼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작전에 착수했다.
구조 대상이 여성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스턴은 그것이 마차도임을 직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는 모두가 마차도의 얼굴을 알고 있다”며 “그녀를 이동시키는 것은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비밀리에 이동시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위험”이라고 말했다.
마차도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강도 높은 탄압을 피해 약 1년간 은신 생활을 이어왔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을 위한 이번 탈출 역시 극도의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그는 육로로 국경을 빠져나온 뒤 해상에서 구조팀과 접선했고, 이후 약 13~14시간에 걸친 항해 끝에 비공개 장소로 이동해 오슬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작전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한밤중 바다에서 마차도가 구조선에 승선하던 때였다. 구름으로 달빛이 가려진 어두운 밤, 불빛을 모두 끈 채 진행된 승선은 시야 확보조차 어려운 고난도의 과정이었다. 스턴은 “우리 모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었고, 마차도 역시 극심한 추위와 탈진 상태였다”며 “그럼에도 그녀는 안도와 기쁨, 흥분 속에서 버텨냈다”고 전했다.
 |
| '노벨평화상' 마차도 이동 경로 |
이번 작전의 코드명은 ‘오퍼레이션 골든 다이너마이트’.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이자 노벨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이름을 빗댄 것이다. 그레이 불은 항공기·헬리콥터 투입, 가이아나·콜롬비아 경유 탈출 등 최소 9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며, 작전 보안을 위해 고의로 허위 정보도 흘렸다. 마차도가 이미 유럽에 도착했다거나, 콜롬비아로 이동 중이라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직접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약 20명이었지만, 정보 제공과 통역, 물류 지원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인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오인 사격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미군과 비공식적 소통은 이뤄졌다고 스턴은 인정했다.
2021년 설립된 그레이 불 구조대는 아프가니스탄과 가자지구 등 분쟁 지역에서 수백 건의 민간인 탈출 작전을 수행해왔다. 스턴은 “이번 임무는 그 어떤 작전보다 위험했고, 동시에 가장 보람 있었다”며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한 인물의 생명, 그리고 한 어머니의 생명을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마차도의 탈출은 단순한 개인 구조를 넘어,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과 국제 사회의 대응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희·숙 <취재기자>